Episode 11: # 인생 2막 1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11:

# 인생 2막 1화





“효상아, 승기 데리고 회사 앞으로 오늘 저녁에 와.

저번에 네가 부탁했던 투자 말이야. 그것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려고.

그럼 이따가 봐. 기대해도 된다. 인생 2막이라고! 인생 2막!!”



1. 오래간만에 듣는 우현이의 들뜬 목소리다. 얼마 전 출장으로 중국에 다녀온 게 잘 풀린 것 같다. 중국에 간다고 했을 때, 투자와 관련한 일이 아닐까 내심 기대는 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우현이 말대로 인생 2막이 우리에게 펼쳐지기를 바란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름없는[102] 목소리로 자신의 무지를 한탄했던, 승기의 낙담한[103] 얼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서다. 전세 사기는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승기의 ‘철옹성’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그야말로 산산이 조각난 철옹성의 흔적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무쇠로 만들어진 승기의 올바름은 난공불락[104]이었다. 누구도 그의 옳고 그름을 바꾸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철옹성이다. 그 어떤 외압에도 자기만의 철학을 고수했던 승기다. 예를 들면, 승기는 지역별로 또는 시대별로 따르는 사회의 약속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용인[105]할 수 없는 ‘악법’[106]은 항상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를 부정해서도 거부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지닌 사회의 선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어서다. 사회의 선은 항상 변한다고 믿어서다. 그렇기에 현대인의 가치관으로 과거인의 사건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한다. 설사 현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당시의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고 승기는 확신한다.



현대인은 과거인보다

더 악랄해졌고,

더 이기적이며,

더 가식적이라고 믿어서다.





2. 승기는 인간의 본성 중 하는 욕구이며, 이는 사악함을 완성하는 파괴의 씨앗이라 말한다.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인 배움은 인간에게 양날의 검이라 말한다. 배움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탐욕을 낳아 문명을 발전시킨다고 믿어서다.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했을지는 몰라도, 지구는 파괴되었다는 방증이라고 개탄한다. 또한,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간은 지구 멸망의 시간을 앞당기는 해로운 개체라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 중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 믿는다. 그래서 지구에 기생해 사는 인간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승기는 취할 때마다 말한다. 그러한 인간들이 누군가를 위해 대변해 ‘악법’이라 주장하고,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 외친다 한들, 지구 입장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가식적일까 반문하라고 이야기한다. 그게 다 결국, ‘인간의 이득’을 위해 포장된 선한 행동이라 주장한다.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있으면 ‘악법’이라고 거품을 물고 떠들어 대는 부류를 승기는 저주한다. 그렇기에 승기는 ‘모든 법은 존재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 떠드는 ‘악법’으로 지구에 그나마 덜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승기는 ‘악법’은 세상에 없다고 믿을지도. 누군가에게 ‘악법’은 다른 이에게 살아가는 힘일지도 몰라서다.



지구에

유일한 ‘악법’은

인간의 존재다.



3. 승기의 생각은 다소 과격하다. 하지만, 그게 난 또 좋았다. 아니, 자랑스러웠다. 승기처럼 외부와 타협하지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올곧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또래가 되면 다들 안다. 승기처럼 외톨이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다들 그런 척할 뿐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것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작은 깨달음일까?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위는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생긴다.

그리고 소중한 가치는

불순한 먼지가 섞여 있다.

예외는 없다.

그 과정은 같다.

그래서

우리 또래가 되면

비겁해진다.

너희는 다를까?





4. 승기의 내적 파괴로 인한 극적인 변화는 너무나 놀랍다. 국가가 승기를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다. 승기가 그렇게나 저주했던 사람들, ‘악법’이라 외치며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그들과 진배없다.[107] 이건 승기에게 좋은 변화일까? 그래, 적어도 우현이가 말한 투자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게 좋은 변화라면 변화다. 더는 독야청청[108] 외계인은 아니니까. 승기도 이제는, 나와 똑같은, 지구 멸망의 시간을 앞당기는 해로운 인간이다. 더군다나 눈가의 그득한 먹구름으로 만들어진 수심[109]의 그림자를 뒤집어쓴 승기의 다른 고민은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승기는 아내가 이 사실을 알까 봐 전전긍긍한다.[110] 아내를 무서워하는 승기라니. 도저히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승기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어떻게 철옹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을까? 철옹성의 재료가 무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쇠를 가장한 마시멜로였을까? 승기의 불순한 먼지를 처음으로 목격했기에 안도감[111]과 실망감[112] 그리고 가엾음[113]을 동시에 느낀다.


“승기야, 이번에는 우현이한테 아무 말 마라. 그냥 하자는 대로 해. 볼드몰트 사건 때처럼 행동하지 말고. 진짜 부탁이다. 지금은 네가 부탁하는 처지야. 알지? 무슨 뜻인지?”


승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이라면, 벌써 한소리 했을 법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현이의 행동 대부분을 의심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은 불안하고 복잡한 그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그래도, 칙칙한 분위기로 우현이를 맞을 수는 없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





“승기야, 그래서 수사는? 진전은 좀 있어? ”

“진전은 개뿔. 수사를 의뢰한 이후로 전화 한 통이 없다. 한 통이. 나같이 능력 없고 연줄 없는 사람한테 신경 쓸 겨를이나 있겠어? 바쁘신 분들이? 도대체 국가는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사람이 전부다.’라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외치지. 아니다, 국가가 말하는 사람 중에 난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가 보다.”


5. 아뿔싸, 건들지 말아야 할 역린[114]을 건드렸다. 분위기 전환은 실패다. 차라리 고개 숙이고 침묵하고 있을 때가 보기 좋다. 승기의 목소리가 카페가 떠나갈 만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덕분에 주위 사람 모두가 우리를 쳐다본다. 평소에 우아함을 강조해 공공질서의 미덕을 중시한 승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믿었던 주인에게 버림받아 분노로 가득 찬 상처 입은 미어캣이 눈앞에 있을 뿐이다. 미어캣은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공격성이 매우 강해 흉포한[115] 동물이다. 동족을 가장 많이 살해하는 포유류다.[116] 지금 승기 모습이 딱 이렇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중요치 않다. 역린을 건드린 자라면 누구라도 물어뜯을 기세다. 항상 냉정한 모습을 보였던 승기라, 이런 모습은 놀랍고 낯설며 무섭다. 그러고 보니 우현이도 미어캣과 닮았다. 승기 안에 우현이가 있을까? 다른 주제로 대화를 옮겨야 한다.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 이러다가 우현이까지 물어뜯는다. 그럼 너도나도 더는 기회가 없다. 승기야. 정신 차려!



to be continued....



[102] 시름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맥이 없다 [출처:국립국어원]

[103] 낙담 (落膽):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

[104] 난공불락 (難攻不落): 공격하기가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않음.

[105] 용인 (容認):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정함.

[106] 악법(惡法): 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법률.

[107] 진배없다: 그보다 못하거나 다를 것이 없다.

[108] 독야청청 (獨也靑靑): 홀로 푸르고 푸르다는 뜻으로, 높은 절개가 있음을 비유한 말.

[109] 수심(愁心): 매우 근심함. 또는 그런 마음.

[110] 전전긍긍(戰戰兢兢): 몹시 두려워 벌벌 떨며 조심함.

[111] 안도감(安堵感): 안심이 되는 마음.

[112] 실망감(失望感): 희망을 잃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한 느낌.

[113] 가엾음: 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

[114] 역린 (逆鱗): 임금의 분노《용의 턱 아래에 난 비늘을 건드리면 죽임을 당한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 건드려서는 안 될 약점을 건드려 상대방의 분노를 사는 것

[115] 흉포: 흉악하고 포악하다.

[116] 송혜민, 『포유류 중 동족살해 최고는 미어캣…인간은?』,

나우뉴스, 2016.10.04.,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0046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