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 인생 2막 2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11:

# 인생 2막 2화




“승기야, 그나저나, 집에 처박혀 글만 쓰니까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졌잘싸[117]의 유혹’ 기억나지? 내가 딱 그 상황이거든. ‘졌잘싸의 유혹’에 빠져 있는.”


“효상아, 항상 강조했잖아.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개념은 자기변명을 위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졌잘싸의 유혹’에 빠지는 부류가 밥 먹듯이 말하는 게 있어. 이번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래서 모든 과정은 소중하다고. 이처럼 무책임하게 말하는 이를 보노라면, 정말로 뻔뻔하지 않냐? 위선의 가면을 쓴지도 모른 채 가식적인 자기 모습을 감추는 데 급급한데 말이야.”



6.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승기의 두리안 냄새가 카페를 조금씩 점령 중이다. 이 기세를 몰아가야 한다.



“승기야. 네 말이 맞아. 그나저나 다시 한번 설명 좀 해줄래? 인생에서 ‘졌잘싸’를 강조하는 이들이 왜 가식적인지를?”


“효상아, 일단, ‘졌잘싸’라는 표현을 쓰려면 두 개의 요건을 충족해야 해.


하나는 상대가 나보다 강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보는 사람이 감동해야 해.


많은 이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졌잘싸’를 인용해. 그들은 과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해.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말하지. 누가 들어도 자아 성찰을 느낄 수 있는, 돋보이는 말 아니니? 그런데, 사실은 말이다. 자아 성찰의 개념을 ‘졌잘싸’에 적용하기는 어려워. 아니, 무리가 있다고. 자아 성찰을 했다면, 자기에게 ‘졌잘싸’라는 말을 쓰지도 않아.


잘 생각해 봐. 스포츠에서 강한 팀을 만나서 예상외로 선전[118]했어. 그리고 경기에 졌어. 그때 우리는 ‘졌잘싸’라는 용어를 쓰잖아. 처음에 말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서야.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지? ‘졌잘싸’를 적용하려면, 전투력이 강한 상대를 만나야 해. 감동은 다음 문제야. 강한 상대도 아닌데, 분투[119]했다면 관중으로부터 오히려 욕먹을지도 모르니까. 어른이 청소년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논쟁해서 진다면, 누가 그것을 ‘졌잘싸’라고 하겠어? 그리고 스포츠의 묘미 중 하나가 ‘졌잘싸’를 볼 수 있는 경기 관람이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스포츠에서는 빈번하니까. 그런데, 보통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스포츠의 종류는 정해져 있어. 리그가 존재해 팀으로 이루어진 단체 스포츠야.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이 대표적인 예시지. 구성 요건을 갖춰 리그나 토너먼트에 참여하면, 규정의 특성상, 반드시 적어도 한 번은 강팀과 약팀이 만나서 경기를 해야 해. 그렇기에 자연스레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일어나지.


하지만, 팀이 아닌 개인으로 이루어진 격투기 스포츠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처음부터 불가능해. 챔피언은 어떠한 상황에도 갓 들어온 신인과 경기하지 않아. 승리를 떠나서 신인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잠재력이 높은 신인일지라도 챔피언과 경기를 하려면 순서가 있어. 일단, 레벨이 맞는 사람과 경기를 통해 자기 순위를 올려야 해. 그렇게 자연스레 실력도 상승하면서 단계를 밟는 거지. 결국, 레벨이 맞지 않으면 경기조차 성립하기 어려운 게 격투기 스포츠지. 물론, 격투기 스포츠에서도 ‘졌잘싸’의 경기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단체 스포츠처럼 현저한 전력 차이가 있는 싸움은 없어. 서로 비등비등한[120] 선수끼리만 경기하는 거고, 그 안에서 감동이 일어날 때, 우리는 ‘졌잘싸’라고 말해. 즉,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둘 중 어디에 속할까? 인생은 격투기 스포츠와 비슷해. 단체 스포츠가 아니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와 인생의 다른 점이 뭔지 알아? 스포츠는 ‘졌잘싸’를 말해줄 관중이 있어. 하지만 우리 인생은 관중이 없다는 거야. 물론, 지인이나 가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관중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라. 모든 이는 각자에게 놓인 인생의 숙제를 해결하느라 다른 이의 인생을 진중하게 지켜볼 여유가 없어. 자기 문제로도 골머리가 아파. 그렇기에 스포츠를 시청하는 관중처럼, 사건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시간을 내서 지켜보기가 어렵다고. 그게 가장 큰 차이야. 스포츠와 인생은. 결국, 인생에서 ‘졌잘싸’의 표현은 온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에 참여한 자기 자신만 쓸 수 있다는 뜻이야.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졌잘싸’로는 위안을 얻기 힘들지. 설사 그게 위로로 건넨 말일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관찰했을 리가 없으니까.


이어서 말하면, 격투기와 비슷한 우리 인생은 원한다고 처음부터 골리앗과 싸울 수가 없어. 비슷한 전력을 지닌 상대와 경쟁해야 하니까. 그렇기에 조건이 비슷한 사람과 경쟁해서 졌다면?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반복한다면? 이유는 하나잖아. 방향은 둘째치고 노력을 안 한 거야. 노력을 안 한 거라고. 이러한 상황에서 ‘졌잘싸’를 외쳐 자기 위로를 하는 게 무슨 깨달음이 있을까? 순전히 방어기제[121]에 불과해. 그냥 핑계라고.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라면,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서 ‘졌잘싸’를 외치지도 않아. 방어기제도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지 않아? 도대체 몇 살까지? 방어기제 타령하면서 ‘졌잘싸’를 외칠 건데? 결국, 천둥벌거숭이들이지. 천둥벌거숭이들은 자기 능력을 애써 모른 척해. 다들 과대망상자라니까. 그리고 단계를 뛰어넘으려 하지.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체급을 무시한 채 높은 체급과 경쟁하려고 해. 그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그런다고 누가 그 시비를 받아주기나 할까? 무시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아무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아. 그래도 그들은 계속 시도할 거야. 계속 시비를 걸 거야. 그래야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니까. 하지만 결론은 뻔하지 않을까? 제풀에 지쳐 자포자기[122]하는 상황이지. 안 그래?


그러니 인생에서 ‘졌잘싸의 유혹’에 빠진 부류는 처음부터 욕심내 이룰 수 없는 목표에만 몰두해. 너무 거창하다고. 꿈을 꾸는 것과 망상[123]을 좇는 것은 다른 의미야. 꿈을 좇는 자는 단계를 무시하지 않아. 현재 자기 능력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해. 하지만,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은 단계를 무시해. 그들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빠른 길이 있다고 믿어. 문제는 뭔지 알아? 이들은 각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업무의 질과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몰라. 또한, 각 업무에 따른 부담의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도 알지 못해. 왜일까? 단계를 밟아 올라가려고 노력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바닥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거야.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음 단계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알 길이 없잖아. 안 그래? 이들은 자기 능력과 관계없이 멋진 허울[124]에만 집착한다고. 그게 남들한테 말하기도 멋지니까. 처음부터 알고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래, 많은 사람이 너처럼 글을 쓴다고 해. 작가가 되고 싶어 해. 내 주위도 그러한 사람들이 좀 있어. 남들한테 글 쓴다고 하면, 왠지 있어 보이잖아. 실상은 무직이면서. 가족의 생계를 나 몰라라 하면서. 스스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라 착각하면서 살지도 몰라. 그런데 효상이 너도 알잖아. 그러한 부류는 정작 몇 년이 흘러도 책을 완성하지 못해. 진짜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 오늘도 인테리어 예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켠 채, 고뇌에 빠진 자기를 사랑하겠지. 그리고 스스로 자기 창작에 빠져 있다고 세뇌하겠지. 그런다고 갑자기 글쓰기 능력이 향상될까?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몇백 잔을 마신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한 부류는 결국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냥 그 허울을 따라 하고 싶겠지.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망상을 좇으며

허울을 사랑한 자라면


그의 마지막 정차역은

‘졌잘싸’이지 않을까?


효상아, 넌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해. 넌 천둥벌거숭이가 아니니까.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서 ‘졌잘싸의 유혹’을 이겨내야 해. 난 믿는다. 너를. 그리고 인생은 순리대로 승수를 쌓아 챔피언이 되어야 해. 그래야 정점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어.”





7. 반갑다. 내가 아는 김승기로 돌아왔구나. 그래, 이런 캅사이신 듬뿍 담은 두리안 맛이 승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지. 그런데 말이야. 승기야. 이제 당할 만큼 당했고 데일만큼 데었잖아. 모든 사람이 승기 너처럼 논리적이지 않아. 더군다나 순수하거나 이타적이지도 않아. 불현듯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네. 선생님은 모든 길은 하나로 이어진다고. 그래서 길을 이어 줄 건널목이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건널목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신호등 또한 필요하다고 말씀했어. 학교에서 배운 정의는 공정과 상식을 이루는 근간이래. 그리고 공정과 상식은 수많은 건널목이라고. 그 건널목을 건너려면 교통신호인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어. 그래서 어린 시절에 나는 말이야, 모든 어른이 건널목에서 신호등의 신호를 항상 지킨다고 굳게 믿었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모든 사람은 일단 건널목에서 정지해야 해. 그리고 신호등의 신호를 기다려야 해. 그리고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그렇기에 출발점은 서로 달라도 지향하는 생각은 하나라고 믿었어. 그렇지 않으면 건널목을 건널 수가 없잖아. 건널목과 교통신호의 올바른 역할로 서로 다른 목소리, 지문, 발자국 그리고 생각을 지닌 어른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고 배웠어. 적어도 우리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했어.



얘들아,

빨간등의 신호는 멈춤이란다.


얘들아,

초록등의 신호는 출발이란다.


교통신호를 꼭 지키렴.

그래야 사고가 나지 않는단다.


그런데, 건널목에 서 있는

어른들은 이상하다.


빨간등의 신호에도

초록등의 신호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황색등이 켜질 때만

건널목을 건널지 결정한다.


뛰어갈지

걸어갈지


황색등의 신호는

멈춤이라고 배웠는데?


선생님! 선생님! 왜 뛰어가세요??

황색등이잖아요!! 사고 난다고요!!


어른들은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다.


건널목과 교통신호는

초등학생인 우리만

지키는 약속인가 보다.



to be continued....



[117]“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

[118] 선전 (善戰): 있는 힘을 다해 잘 싸움.

[119] 분투 (奮鬪): 있는 힘을 다해 싸우거나 노력함.

[120] 비등비등 (比等比等): 여럿이 모두 비슷하게.

[121] 방어기제 (防禦機制): 두렵거나 불쾌한 일, 욕구불만에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

[122] 자포자기 (自暴自棄): 절망에 빠져 자신을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음.

[123] 망상 (妄想): 이치에 어그러진 생각.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따르지 않는 믿음

[124] 허울:실속이 없는 겉모양.



https://youtu.be/CA_OlVED8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