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 인생 2막, 5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11:

# 인생 2막, 5화





19. 우현이가 보낸 사무실 주소는 사는 곳에서 꽤 거리가 있다. 넉넉하게 지하철로 1시간 30분 정도다. 우현이는 아버님과 만나 따로 출발할 예정이다. 승기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꾸부정한 자세로 담배를 피우는 시크한 것인지 우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승기가 멀리서 보인다. 승기는 결국 담배를 다시 피운다. 금연은 실패다. 그래, 네 타는 속을 담배 한 모금의 연기가 위안을 준다면 얼마든지 다시 피우거라.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한다. 승기는 오늘도 조용하다.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승기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걱정스럽다. 무엇이 승기를 이처럼 변하게 했을까? 주위 사람의 대화가 자연스레 들린다. 너무나 다들 재잘거린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동시에 재잘거리니 도통 무슨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기분이 이렇게 안 좋은데, 지하철 안은 기분 좋은 소음만 가득하다. 솔직히, 난 아니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떨린다. 기분 좋은 떨림이다. 우현이의 아버님이 무척이나 궁금해서다. 어떤 분일까? 오늘 우현이 아버님을 뵈는 게 어쩌면 최종 면접일지도 모른다. 긴장된다. 물론, 나와 승기가 면접에서 떨어질 일은 없다. 우현이 덕분이다. 이것도 승기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과정일까? 아무렴 어떠냐! 지인 찬스가 이렇게나 좋은 거다. 정말 뼈저리게 느낀다. 우현이 아버님도 나와 승기를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다. 곧 아버님과 면접인데, 이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면접장에 들어갈 수는 없다.



“승기야, 네 생각은 어때? 우현이 아버님 사업이 잘될 것 같아? 난 두근두근한다.”


“효상아, 사업의 흥망성쇠가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할까?”



그래, 삐딱한 승기 어디 안 갔다.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승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사업이 잘되면 우리한테 좋은 거지, 안 그래? 왜 또 삐딱하게 굴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효상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삐딱하게 구는 게 아니야.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하다고. 잘 생각해 봐, 너, 우현과 평생 같이 일하려고?”


“승기야, 물론 그건 아니지. 그건 불가능해.”


“그래, 효상아, 우리는 어차피 우현과 평생 일을 같이할 수는 없어. 안 그래? 그리고 굳이 따지면 우리는 직원에 불과해. 직원은 월급만 매달 밀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회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사장의 고민이지, 직원의 고민은 아니야.”


“승기야, 그래도 우리가 뭐더라? 맞다, 무한책임사원이잖아. 그럼 책임감을 느껴야지, 안 그래? 그리고 너와 나 그리고 우현이와의 관계가 단순하게 사장과 직원으로 나누기는 좀 그렇지 않아?”


“효상아, 우리가 언제 금전 관계로 얽힌 적이 있어? 이번이 처음이잖아. 그리고 한 사람도 아니고 너와 나 두 사람, 모두에게 천만 원을 주는 친구가 주위에 또 있을까? 적어도 내 주위는 없어. 더군다나 우리가 투자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도 프로젝트 수익금 일부를 우리한테 준다고 이야기해. 그게 무슨 소리야? 뻔한 거지. 그 돈을 받은 시점부터 우린 이미 구두로 계약한 거야. 우리는 직원, 우현은 대표이사.”





20. 승기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현이와 관계를 단순하게 바라보았나 싶다. 하긴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사업 규모가 남다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우현이는 회사를 차린 걸까? 그럼 우현이를 앞으로 대표이사로 불러야 하나? 갑자기 우현이 아버님을 뵐 생각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승기가 사업에 관련해 그동안 아무 말이 없었는지를 조금은 알겠다. 말을 아낀 거다. 우현이를 친구가 아닌 상사로 대하기로 해서. 머리가 복잡하다. 우현이에게 전화가 온다. 냉큼 받는다. 늦게 받으면 안 될 것 같다.



“효상아, 사무실로 바로 와. 아버지가 너희와 만남을 아주 기대해. 곧 도착이지? 그럼 이따가 봐.”


“넵, 아니, 그래, 알겠어. 이따가 보자. 긴장 엄청나게 된다.”


“효상아, 우리 아버지 보는데 긴장을 왜 하냐? 무슨 면접 보러 오냐? 하하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무실은 생각보다 작다. 사무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황학동 가구거리에서 급하게 중고로 구매한 철제책상 3개와 원탁 테이블 1개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의자가 전부다. 위치를 찾지 못해 덩그러니 뻘쭘하게 놓인 스투키 한 그루가 현재 처지를 말하는 듯하다. 우현이가 떠벌린 사업 규모와 비교하면 사무실의 수준은 초라하다. 그렇다고 우현이에게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우현아, 이 사업, 제대로 가는 것 맞아?



“왔구나, 얘들아, 사무실 정리가 아직 덜 됐다. 하긴 정리할 기구도 없다. 보시다시피. 노트북만 있으면 되지. 안 그래?”


“우현아, 아니 대표님, 그렇게 부르는 게 좋겠지? 셋이 일하는데 사무실 환경이 좋으면 뭐 해? 이 정도면 준수하다.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그나저나 아버님은 언제 오시니?”


“승기야, 대표님은 무슨,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해. 아버지는 오늘 오지 않아. 아버지는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 오기 어려워. 그래서, 너희들을 위해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려고.”






21.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보자마자 대표님이라니? 승기의 태세전환은 놀랍기만 하다. 나도 그렇게 불러야 하나? 아직은 그렇게 부르는 게 어색하다. 우현이도 뭐, 편하게 하라니까. 여하튼 영상통화라니? 아버님은 사정이 있다고? 갑자기 불안하다. 합법적인 일이지? 맞지? 우현아?



“우현아, 아버님과 영상통화를?”


“효상아, 배 안 고파? 일찍 와서 정리한다고 혼자서 끙끙거렸더니 허기진다. 일단 뭐 좀 먹자. 영상은 이따가 보자. 중국집 콜?”



무엇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사 온 날은 무조건 중국집 음식이다. 승기는 이사할 때마다 우리를 불렀다. 메뉴는 항상 똑같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그리고 탕수육을 주문한다. 사실, 주문한 음식을 다 먹지 못한다. 매번 남긴다. 항상 많이 시켜서다. 그래도 이처럼 많이 주문하면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좋다. 지금이야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고르고 주문한다. 그만큼 세상은 편해졌다. 예전에는 배달하면 떠오르는 메뉴는 정해져 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그리고 탕수육이다. 신문지를 돗자리 삼아 잠시나마 논쟁으로 얼룩진 사회를 소르르[132] 풀리게 하는 따뜻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짜장면, 볶음밥, 짬뽕 그리고 탕수육을 주문해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러운 이야기로 기분을 망치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다.



“얘들아, 배도 든든하고 커피도 한잔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아버지와 만나볼까? 긴장 좀 해. 우리 아버지 좀 깐깐하다.”






22. 우현이는 노트북 바탕화면 안에 있는 파일을 클릭한다. 프로그램 구동 중이다. 프로그램이 열리니 아이디와 비번을 누르라고 요청한다. 우현이는 아이디와 비번을 누른다. 프로그램에서 영상화면을 창으로 띄운다. 한 남자가 걸어서 의자에 앉는다. 우현이 아버지다. 영상 속에 남자는 깔끔한 짙푸른 슈트 차림이다. 머리는 바짝 힘을 준 2:8의 포마드 스타일이다. 눈에는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영상을 뚫어 외부까지 전해진다. 포근한 옆집 아저씨의 느낌은 아니다. 그래, 카리스마 넘치는 군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블루 고스트 아시아 헤드 정호입니다. 우현이를 통해 들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라고. 우현이 아비로서 여러분을 만나 참 기쁩니다. 다만, 오늘은 아버지가 아닌 상사로 여러분과 대면하려고 합니다. 사실, 블루 고스트는 말 그대로 ‘유령’이기에 이처럼 신분을 노출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현이가 친구 두 분한테 블루 고스트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현이의 특별한 친구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현이 부탁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경우입니다. 앞으로는 우현이를 통해서만 업무를 진행하니 유념[133]하세요. 궁금한 게 무엇인가요? 호칭은 정호 님이라고 하세요.”



to be continued....



[132] 소르르: 뭉치거나 얽히거나 걸린 물건이 잘 풀리거나 흘러내리는 모양.

[133] 유념 (留念): 잊거나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