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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우 Aug 11. 2024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야"

"무대 암전"

소외감이라는 감옥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그린 그림인데요. 스케치 형식으로 정말 간단하게 그린거라 잘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 그림은 제가 살면서 겪은 한 순간을 그린 그림이에요. 전 저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는데요.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도록 할게요.



처음 마주한 이상한 느낌


저의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볼게요. 저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에 유치원 가는 첫 날의 기억이 있는데요. 따뜻한 엄마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낮선 세계로 가야만 한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두려웠는지 유치원 가기 싫다고 준비하는 내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유치원에 가면 즐겁게 놀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면서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나 항상 행복했던 건 아니였는데요. 장애가 걸림돌이 되는 순간을 유치원에서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요.


유치원 안에는 여러 놀이방들이 있고 대부분 다들 바닥에 앉아 놀거나 여러 놀이기구?들을 이용해서 놀았어요.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같이 놀고싶어 바닥에 앉아 친구들 사이에 끼려고 노력하거나 놀이기구 안에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잘 되지 않았어요. 바닥에 앉아 블록놀이를 하려고 하는데 블록이 상자 안에 있어 꺼내지도 못했고, 다른 친구들에게 꺼내달라고 해도 다른 친구들은 다들 놀기 바빠서 절 신경쓸 겨를이 없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은 바닥에 앉아있다가 다른 곳으로 놀러가는 일이 많았는데 저 또한 일어나 따라가고 싶지만 혼자 일어날 수가 없으니 홀로 바닥에 앉아 다른 친구들이 저 멀리 가는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였던 것 같아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뭔가 마음이 턱하고 내려앉으면서 마음 한켠에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그 서늘한 기분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선명해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물론 초등학교 시절이 나빴다는 건 아니에요. 학교에 가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도 너무너무 많고, 집에 가면 가족들은 언제나 저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큰 걱정 없이 놀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당연하게도 제 몸, 그러니까 제 장애이고, 유치원 때 느꼈던 그 이상한 기분을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쉬는시간이였던 걸로 기억해요. 유치원 때와 마찬가지로 쉬는시간에 교실 뒤쪽 바닥에 앉아 놀고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다 쉬는시간이 끝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자리로 돌아가기 바빴기 때문에 저를 일으켜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쉬는시간이 끝나고 심지어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오실 때까지 혼자 바닥에 남아있었던 적이 있었고, 그런 일이 한번이 아니라 꽤 자주 일어났었어요.


위의 그림은 그때 그 순간을 담은 그림이에요.

그림을 다시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책상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그리고 뭔가 범접할 수 없이 엄청 커 보이게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느낌 그대로 표현한 건데요. 뭔가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나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친구들의 모습은 어린 저의 시선에서 참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절대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지금은 그것이 소외감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잘 알아요.

소외감이라는 감정은 참 무서운데요. 일반적인 외로움을 넘어서서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공포가 밀려오는 느낌이 있어요.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들과의 벽을 세우게 하고, 그 벽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더 커져만 가 나를 가두더라고요. 끝없이 저 바닥으로 꺼지는 듯한 공허함이 밀려오고 더 나아가 내가 홀로 방치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슬픔을 넘어선 두려움이 밀려와 울고싶어질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전, 소외감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됐어요.



또 하나의 고난


하지만 소외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또다른 고난이 찾아오더라고요. 그건 바로 다른 친구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받는 상처들이였어요.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일들은 3가지 정도 있는데요.

한 친구가 저보고 장난친다고 "야 너는 내가 한 대만 때려도 뼈 다 부러지고 넘어질걸?" 이런 식으로 말을 했던걸로 기억해요.

또 한번은 제가 도움 받아야 할 일이 있어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마치 저를 도와주는 일이 벌칙인 것처럼 서로 누가 도와줄지 가위바위보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뛸 때 자세가 좀 이상한데, 그 자세를 다른 친구들이 웃으면서 따라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친구들이 뱉은 말들이나 행동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주로 악의적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그당시 제 여린 마음에는 큰 상처가 됐었나봐요.


그런 일들이 쌓이다보니, 또 소외감이라는 감옥에 갇혀 스스로 더욱더 소심하게 변해가다 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피해의식이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다 나를 이상하게 볼거야.'

'(떠들고있는 친구들을 보며)아~ 또 내 모습 보면서 이상하게 얘기하고 있겠지?'

'다들 나를 놀리니까 너무 힘들어...'


사실 이 부분이 초등학교 시절, 더 나아가 초중고 모든 시절 중 제일 후회되는 부분 중 하나에요.


전 언제나 제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어요.

모든 일이 다 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다른 친구들이 날 제대로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원더>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의 어린 주인공은 처음 초등학교에 가게 되는데요. 그 친구도 저의 초등학교 시절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용기있게 초등학교에 갔지만 주위에 있는 친구들은 그 주인공 친구의 얼굴을 가지고 놀리기 시작해요. 결국 그 친구는 점점 소심해지고 저와 같은 피해의식이 자리잡게 돼요.

그러다 정작 자신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다 내 이런 모습 때문이지..!!라고 가족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때 주인공의 누나가 이런 말을 해줘요.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야."


저에겐 저 대사가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 인상깊었어요.

정말 어린시절의 저에게 똑같이 얘기해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라고, 그러니 그렇게 혼자 무너져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더 나아가 너가 다른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라고.

왜냐면 저만 피해자는 아니였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그 피해의식은 여러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거에요. 서로가 행복하게 지내려면 한쪽만 노력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더 많았아요. 진심으로 도와주고 걱정해주며 재밌게 놀아주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스스로 소외감과 피해의식에 빠져 모든걸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이죠.

친구들의 말 한두번, 행동 한두번이 소외감과 피해의식으로 가득찬 감옥 앞까지는 끌고 갔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실제로 그 감옥에 들어가 문을 잠근건 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였어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옥의 죄수이자 간수였던 거에요.


이런 것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가 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생님께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서운한 점이 있다면 그 점을 종이에 적어 그 친구의 책상 위에 두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당시 피해의식에 빠져 여러 친구들의 말들이나 행동을 오로지 제 자신만의 생각, 느낌, 기준만으로 적어내기 시작했고, 여러 친구들의 책상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서는 스스로 후련하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마치 그동안 고난에 빠졌던 히어로가 악당을 향해 일격을 날린 기분이었죠.

그런데 나중에 그 친구들이 찾아와 저의 잘못된 생각과 오해를 풀고자 저에게 많은 얘기를 해줬어요. 저는 그때 정말 창피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 친구들의 설명을 듣고나니 그 친구들도 자신만의 사정이 있었고, 오히려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한건 저였다는 걸 알 수 있더라고요.


그 친구들에게,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친구들에게 아직까지 미안해요.

그 뒤로는 서로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저 또한 나름의 노력을 차츰차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동안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피해의식과 소외감이 한번에 없어지진 않더라고요.

물론 나만 혼자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니 그 소외감이라는 것은 또 다르게 찾아와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얘기해볼게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제 과거에 대해 자세히 밝히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글을 작성하면서 부끄러운 제 과거에 대해 얘기하려니 창피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련해지기도 하네요. 긴 글이였는데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정말 감사해요.

8월 16일 금요일에 다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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