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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우 Aug 16. 2024

찐따로 살아남는 법

"첫 대사"

모든게 서툴렀던 나의 어린시절


다음 스텝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소심이가 되어버린 저는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는데요.

중학교에 올라가기가 그때는 참 두려웠던 것 같아요.

저에게 중학교란 그때까지만 해도 중2병에 걸린 비행청소년들이 득실대는 곳으로 생각했었고, 제 장애를 가지고 놀리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만날까봐 굉장히 두려웠었던 기억이 나요.


근데 막상 중학교에 올라가보니 제 주위에 모두 좋은 친구들만 있더라고요.

무섭게 생긴 일진들이 나에게 다가와 괴롭히는 것이 아닌 따뜻한 미소를 가지고 다가와 저를 대해주는 친구들이 많았고, 덕분에 전 굉장히 편안하게 중학교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문제는 나


하지만 그놈의 피해의식과 소외감은 절대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뭔가 저와 그들 사이의 벽이 느껴지곤 했어요. 같이 재밌게 얘기도 하고 별 문제 없이 지냈지만 막상 재밌는 일이나 무리에서 재밌게 노는 일에는 끼지 못하는 느낌이였고, 전반적으로 다 저를 좋게 생각해주지만 제가 어느 무리에 껴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어요.

아,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다른 애들이 저를 왕따 시킨건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너무나 잘 보여요. 아마 다른 친구들이 저를 처음부터 쉽게 대하기는 어려웠을 거에요.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혹시 선우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게 맞는걸까 등등 저를 배려해주는 착한 마음씨가 다른 친구들의 기반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한 따뜻한 배려가 저에겐 역으로 작용되어 왠지 모를 벽을 느끼게 됐고, 마치 제가 유리상자 안에 들어가 외부와 분리된 문화유산이 되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버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를 그냥 편안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저에겐 제일 편하고 고마운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저를 편하게 대해달라고 무작정 부탁하는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먼저 다가갔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내 장애가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도록, 그로인해 친구들이 저를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하는 부분이였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은 저를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에 그렇게 대했을 뿐이고, 지금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저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 뿐이에요.

하지만 그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잘 몰랐고, 그 원인을 이상한 곳에서 찾기 시작했어요.


그당시 저의 주특기는 '모든 문제를 다 내 장애 탓으로 돌리기'였어요.

남들이 나를 존중해주지 못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많이 벗어났지만 남에게 잘못을 찾던 비난의 화살은 저에게로 돌아와 제 스스로를 괴롭히더라고요.


'그래... 내 장애 때문에 다 그런거지 뭐...'

'다들 친구들이랑 재밌게 노는구나... 나도 저렇게 놀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난 장애가 있으니까 이번 생에는 포기해야지 뭐...'



결국 난 찐따가 됐다


이런 '탓'들의 제일 무서운 점은 문제의 본질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충분히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절대 바뀔 수 없는 무언가를 넣으면 그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수밖에 없다고 전 생각해요. 하지만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면 결국 그 모든 '탓'들은 그저 변명이였고 어찌보면 그 '탓'들 뒤에 숨어 피해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진 저의 그 피해의식이 끝까지 남아 저를 저 깊은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이였죠.

피해의식은 끝까지 남아 저에게 패배의식을 선사했고, 소외감을 끝까지 버리지 못해 남은 소심함자신감 저하는 결국 절 찐따가 되게 만들더라고요. 소외되어 있는 내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언제나 꿈꿨지만 그 자리는 내 장애 때문이고 내 장애는 절대 나아질 수 없으니 결국 영원히 바꿀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해버리게 된거죠.


그렇게 저는 지금 애들과 떨어져있는 내 위치가 정상이라고, 이게 내 위치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찐따로 살아남는 법 제1장


하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진건 아니였어요. 지금은 이렇게 그당시의 미숙함에 대해 글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성장했고,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어요. 그 노력의 첫 시작은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2학년 때로 넘어가야 하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물론 제 장애로 인해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체육시간 마다 같이 축구를 했고, 그러다 교내에 축구대회가 열리게 됐어요. 저는 그당시 친구들과 그 대회에 꼭 나가고 싶었고, 처음엔 친구들도 저를 팀에 넣어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 극구 반대하셨어요.

체육시간에 참여하는건 괜찮지만 대회는 다른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제가 다칠 위험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장애인인 제가 다치게 되면 제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했기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됐어요. 하지만 그당시의 저는 꼭 대회에 나가고 싶었고, 정말 끈질기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을 받으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왜 그렇게까지 대회에 참여하고 싶었냐면,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어요. 항상 패배의식 때문에 난 안될거야...라고만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씩 그 울분이 차오를 때가 많았고, 나에 대한 모든 의식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가 아닌 객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기회를 얻어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풀타임으로 뛴 적은 한번도 없고 중요한 경기는 그저 벤치에 앉아있어야만 했지만, 그리고 심지어 그당시 축구화를 하도 세게 묶어 뛰고 나면 발이 너무 아팠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즐겁게 뛰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를 계기로 축구를 통해 내가 뭔가 스스로 해낼 수 있고, 나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아예 인식을 바꾸고자 대회 이후에 친구들과 축구할 때 더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는데요.


글이 길어져 그 이야기는 다가오는 일요일인 8월 18일날 이어서 풀어보도록 할게요.

오늘도 참 글이 길었는데 여기까지 보셨다면 정말 감사해요. 아마 지루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더욱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할게요.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그럼 일요일날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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