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능력의 성장
교과서에 아이 둘이 싸우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 그림을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문장으로 말하기를 하는 시간. 보통은 '친구들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빨리 화해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갑자기
"작작 좀 싸워!"
선생님은 큭! 웃음이 나오는데 아이들은
"작작이 뭐야? 욕이야?"
"흉내 내는 말인가? 선생님, 작작이 뭐예요?"
"oo아, 작작 좀 싸우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
아이는 갸우뚱합니다.
"들은 적 없어요. 그런데 내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았지?"
교실 앞쪽 한 아이가 말합니다.
"전쟁터에서 쓰는 말 같아요."
어감이 나쁘게 들렸나 봅니다. 보통 '작작 좀 싸워!'라고 할 때는 말투에 힘이 들어가니까요. 그리고 의미 역시 [좀 어지간한 정도로 적당하게] 보통은 남의 지나친 행동을 말릴 때에 쓰는 말이지요. 오랜 시간 우리 몸과 감정에 각인된 언어의 온도가 참 무섭습니다. 배우지 않아도 아니까요.
예전에 아이들과 양파 실험을 한 적이 있었더랍니다. 양파를 유리물병에 담아 한 개에는 좋은 말만 들려주고, 다른 한 개에는 나쁜 말만 들려주면서 키웠더랬죠. 그런데 정말 양파가 말을 알아듣는 거였어요. 교실 뒤편에 놓아둔 양파는 아이들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키웠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 친구에게 들리지 않게 양파에게 욕을 대신하라고 했었거든요.
양파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아이들의 손을 자주 타서 그랬는지 교실 앞쪽의 양파는 무리 없이 잘 자랐는데 교실 뒤쪽의 양파는 더디 자라다가 결국 먼저 썩어버렸습니다. 냄새가 지독했어요. 아이들에게는 식물이 말을 알아듣는다는 귀한 전설을 남겨주고 간 양파였지요.
다시금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한 말을 상황에 맞게 습득한 아이가 그런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발화시키는 거지요. 배우지 않아도. 가르치지 않아도 언어능력은 스스로 환경의 힘에 의해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