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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 Jul 28. 2023

긴즈버그의 말과 ChatGPT의 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긴즈버그의 말(In Her Own Words)'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고집스럽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것이 왜 바람직한지, 그리고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 시대의 어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렵고 혼동스러울 때 이런 어른들의 말이 우리의 생활과 삶을 다잡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미국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이런 어른들이 있을지 귀 기울여 경청하고 싶은 어른의 말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아마 그런 어른들이 있을 텐데... 내가 못 찾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이분법적이면서도 원색적인 말의 폭풍 속에서 삶의 방향타를 잡고 있어야 하는 내 손은 힘을 잃고 만다(차들이 몰리는 사거리 신호등 부근에는 여지없이 상대 당을 비난하는 누구누구 국회의원의 말이 씌워진 현수막들이 있다. 아침 출근길부터 힘이 빠지고, 지친다. 정말 이런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까이 계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른의 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꼰대들의 말이라고만 치부하고,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원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다르게 하고 싶다.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특히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말씀에 대해 토론하려고 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아버지,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예정된 꼰대가 되기보다는 내 아이에게만이라도 귀 기울이고 싶은 그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려면 내가 말하기보다 많이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말 좀 하자.


최근 장안의 화제인 ChatGPT가 이 시대 어른의 말을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면서 ChatGPT와 같은 AI 챗봇이 과학기술 분야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AI의 언어 생성 능력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코드 작성을 돕고, 연구문헌을 요약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주목하고 있는 반면에, 사람이 쓴 글과 점점 더 구별하기 어려워지면서 투명한 과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ChatGPT를 개발한 미국의 OpenAI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s)을 사용하여 기술적인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그것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였다. 그 결과, ChatGPT에 대한 놀라움을 가중시키는 쓰기 실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최소 4개의 사전 인쇄 논문 또는 정식으로 출판된 논문에서 이미 ChatGPT를 공식적인 저자로 인정하였다고 조사되었으며, 2022년 12월 medRxiv에 게시된 논문에서 ChatGPT는 저자 12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 논문의 내용은 ChatGPT를 대상으로 3단계에 걸친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을 실시한 결과 모든 시험에서 50%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줬고, 이것은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라고 한다. 

출처 : medRxiv, Performance of ChatGPT on USMLE: Potential for AI-Assisted Medical Education Using Large Language Models, 2022.12.19.


과학기술 연구 커뮤니티에서는 LLM을 윤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본 규칙을 정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 ChatGPT와 같은 LLM이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없는지, 연구에 사용된 LLM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안내글을 추가하는 저널(논문 출판사)들의 움직임도 있다. 


Springer Nature라는 출판사는 2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먼저 논문과 관련된 저자의 속성에는 작업에 대한 책임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AI 도구는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두 번째 LLM 도구를 사용한 연구자는 방법 또는 사사(감사의 말) 영역에 이를 문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 내 이러한 영역이 없는 경우에 소개 또는 다른 적절한 부분에 LLM 사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점으로, 다른 과학 출판사들도 비슷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에서는 LLM으로 만들어진 문서를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 중인데, 특히 주제가 과학기술인 경우에 몇 개 이상의 단락이 관련되어 있고, 비교적 단조로운 형태를 보이며, 단순한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포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ChatGPT는 텍스트 생성 및 문서 작성에 활용한 출처를 인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챗봇을 출처 인용 도구에 연결하는 실험이 이미 진행 중이며, 다른 실험에서는 과학 전문 텍스트로 챗봇을 훈련 중으로, 이러한 한계는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LLM 도구에 의해 작성된 문서에 어떤 식으로든 워터마크를 추가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으나, 이것 또한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이 의존해 왔던 지식 생성 프로세스는 투명성과 신뢰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ChatGPT와 같은 AI 챗봇의 등장으로 과학기술계에 불신의 안개가 드리워질까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말 "잘"하는 챗봇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데에 원동력이 될 것임을 믿는다.

출처 : Nature, ChatGPT: five priorities for research, 2023.2.3


사람이건 로봇이건 우선 말은 "잘"하고 볼 일이다. 여기서 "잘"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추상적이면서도 매우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온전히 내 기준에서의 "잘"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지 싶다. 


1. 예쁘게 말하기 - 상대의 기분과 입장을 생각한 후에 말하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와 나 모두 아는 상황에서는 제발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고 포장하지 말자.


2. 짧게 말하기 - 핵심만 간단하게 말하기. 나이가 들수록 나도 경계해야 하는 것인데, 경험이 많아져서? 눈치 감각이 둔해져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예전에는 슬라이드 한 장으로 30분씩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나는 30분을 발표하려면 적어도 30장의 슬라이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라이드 한 장으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무슨 변화일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좋게 말해 연륜이라고 해야 할까? 좀 더 어렸을 때는 정확하다고 확신하지 못하면 아예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100% 정확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발 약장수처럼 말하지는 말자.


3. 쉽게 말하기 - 앞, 뒤 맥락을 연결해서 이해하기 쉽게 말하기. 논리적인 능력이 어디든 중요하겠지만 유독 논리력을 강조하는 업계에서 일해오면서 나는 한계를 많이 느꼈었다. 이게 논리가 맞나?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등을 많이 들으면서 논리라는 말 자체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같았다. 그러다가 나 스스로 이해한 바는 이렇다. 논리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기라고 말이다.


4. 유쾌하게 말하기 - 나는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좋다. 들을 때 소리 내서 웃을 수 있고, 듣고 나서도 뒤통수를 잡아끌기보다는 앞통수가 시원해지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 그래서 한때 유머에 관한 책을 보기도 했는데... 유머 또한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5. 풍부하게 말하기 - 동일한 표현이라도 단어 선택에 따라 느낌과 전달력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내 몸에 사전 만들기 어떨까? 내 머릿속 풍부한 명사 사전, 내 가슴속 풍부한 형용사 사전, 내 고단한 발 밑의 풍부한 부사 사전, 이렇게 하면 기억에 도움이 될지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위의 5가지 중에서도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번 예쁘게 말하기이다. 아무리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예쁘게 말하지 않으면 그 말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비록 논리적이지 않고 어눌하더라도 할머니의 예쁜 말은 내 가슴속에 깊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말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이지만 MSG는 싫어한다. 말과 인생에 있어 약간의 MSG는 그 맛을 높이고,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직 담백한 게 좋다.


그리고 제일 어려운 것은 4번 유쾌하게 말하기이다. 유머를 배우고자 했던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유라는 것이었다. 말할 때 여유가 있어야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려면 준비가 잘되어 있어야 하는데, 말하다 보면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이 참 많다. 그래서 수학 공식처럼 몇 가지 유머 공식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재미난 기억이나 사례를 들면서 나는 낮추기, 남은 높이기, 또 뭐가 있을까...


그나저나 유머에 관해서는 AI 챗봇처럼 나도 그런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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