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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 Jul 28. 2023

너(심장)와 나(뇌)의 연결고리

천선란 '천 개의 파랑'

머리 따로, 몸 따로였던 로봇이 알파고, 챗GPT 등장으로 또 다른 차원의 발전 단계에 진입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인지와 학습능력을 갖춘 머리와 강한 몸이 함께 있는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로봇은 많은 일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에서는 머리와 몸뿐만 아니라 마음(감정, 느낌)까지 플러스된 휴머노이드 AI 로봇 '콜리'가 나온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 경마장에서 말을 타는 휴머노이드 기수였던 '콜리'는 로봇이라면 하지 않을 인간의 실수(비몽사몽, 무심결)에 의해 우연히 탄생한다.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감정을 느끼는 로봇으로 말이다. 콜리의 원래 명칭은 C-27이었으나 연재를 만나면서 콜리(브로콜리의 콜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였으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된 것과 같이 이름을 갖게 된 콜리는 연재에게, 또 연재는 콜리에게 그 무엇(의미 있는 존재)이 된다. 


소설에는 서로에게 그 무엇(의미 있는 존재)인 관계가 여럿 나오는데, 그중에도 콜리와 투데이의 교감이 인상적이다. 투데이는 콜리가 타는 경주마(로봇이 아닌 진짜 말)의 이름이다. 달릴 때 투데이가 행복해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콜리는 투데이에 오르기 전 갈기를 쓰다듬고, 마치 자신도 호흡을 하는 것처럼 투데이와 호흡을 맞추어 주로를 달렸다. 그럴수록 콜리와 투데이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성적은 좋아졌다. 투데이는 이름과 같이 오늘만 있는 것처럼 열심히 달렸지만, 만족이 없는 속도의 강요 속에서 투데이는 연골이 닳아 갔고 말 그대로 뼈가 부딪치는 고통 속에서도 달려야 했다. 


콜리는 투데이를 위해 2번의 낙마를 선택한다. 첫 번째는 빠르게 달리면서 고통을 느끼는 투데이를 위해, 두 번째는 느리게 달리면서 행복을 느끼는 투데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기술의 미래상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소설의 주제 자체가 흥미롭기도 했고, 감정을 감추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콜리를 통해 연재와 가족, 친구, 그리고 아는 사람들 사이의 감정선에 전류가 흘러 어둡고, 차가웠던 마음이 환하고, 따뜻해지는 것을 보면서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내가 느끼는 책의 의미, 재미와는 별개로 여기에서 드는 질문이 있다. 과연 AI 로봇이 감정이나 느낌을 갖게 될까? 기술의 발전이 어떤 뜻밖의 변화를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내 생각에 AI 로봇이 감정을 느끼게 되기는 상당 기간 힘들지 싶다. 왜냐하면 감정이라는 것이 똑똑한 뇌만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서도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즉, 뇌뿐만 아니라 오장육부나 감각을 담당하는 인체의 다양한 장기가 제대로 구현된 로봇이어야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요원한 일이 아닐까 하는 내 생각이다.



불안,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우리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한다. 실험을 통해 불안, 두려움을 느낀 뇌가 심장으로 신호를 보내 심박수를 증가시키는 경로는 과학적으로 일찍이 규명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심박수가 증가하면 불안,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1세기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심박수와 같은 신체 기능을 독립적으로 제어하고 이것이 불안,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연결 고리를 관찰할 수 있는 실험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도하였던 전기 충격, 신경 자극, 약물 실험과 같은 방법은 부작용 발생이나 다른 신체 장기에도 영향을 미쳐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빛을 통해 세포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이란, 광학(optics)과 유전학(genetics)의 합성어로서 빛으로 세포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바이오기술이다. 광유전학은 빛에 의해 유전자와 단백질 발현을 조절하여 세포의 활동을 제어하고, 이것이 어떤 효과를 유도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광단백질은 시각을 담당하는 우리 눈에 많이 분포하는데, 광유전학의 원리는 그간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데에 많이 활용되어 왔고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광유전학을 심장세포에 적용한 연구이다.


이번 연구 또한 마우스 모델(인류의 과학과 건강을 위해 희생되는 실험동물에 대한 글을 언젠가는 써야지...)을 이용하여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마우스 심장의 근육세포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관련 유전자를 심장세포에 전달하였다. 그리고 연구팀의 새로운 접근방법 중에 하나는 비침습적인 광학 심박조율기라는 것을 개발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다른 연구에서는 발광체를 단 탐침을 뇌와 같은 체내 조직에 이식하는 침습적인 방식이었던 데에 반해  빛을 방출하는 조끼를 제작하여 마우스에게 입히는 비침습적인 방식으로 광유전학의 원리를 활용하였다.


연구과정은 광학 심박조율기를 통해 특정 빛을 방출하면 마우스의 심장 근육이 활성화되어 심박수가 증가하도록 설계하였다. 실제로 실험한 결과, 조끼에서 내는 붉은빛은 심박수를 증가(빈맥 발생)시켜 불안 관련 행동(개방된 공간을 회피하고자 하는)을 유발하였고, 뇌의 후부 섬엽(posterior insula)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를 통해 오래된 질문(심박수가 증가하면 불안,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렇다)을 해결하게 되었다. 


더불어 연구팀은 불안 행동을 유도하는 회로뿐만 아니라 빈맥에 의해 후방 섬엽이 활성화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또한 만성적인 심박수 증가가 뇌에 해로운 수준의 불안을 야기하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토대와 치료적인 관점에서 심박수를 감소시킬 경우에 불안 관련 행동이 억제되는지 실험 설계가 가능해진 점에 대해서도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림 설명 : 조끼(fabric vest)에서 내는 붉은빛은 심장 근육세포에서 ChRmine이라는 빛에 민감한 옵신(opsin) 단백질을 활성화시키고, 양전하를 띤 이온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여 심박수를 증가(빈맥 발생)시켰더니 불안 관련 행동이 증가하였고, 뇌의 후부 섬엽(posterior insula)이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

그런 다음 청색광에 민감한 옵신 단백질인 iC++를 통해 음전하의 이온을 통과시켜 후부 섬엽을 비활성화하였더니 불안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

출처: Nature, How an anxious heart talks to the brain, 2023.3.1.



고등학교 시절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를 참 좋아했던 친구는 일기장 같이 소중한 노트 앞에 시의 마지막 부분인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를 시그니처 문구처럼 써놓았다. 그 당시 나도 꽃(시)을 좋아했지만 친구와 달라야 했기에 윤동주 님의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까지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문장을 나의 시그니처 문구로 정해서 친구처럼 노트 여기저기에 적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 때 친구와 함께 시를 많이 읽으면서 참 좋아했었는데,  나이도 들고 삶의 빠듯한 경로에 들어서면서 시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누가 판단할 수 있을지 평가지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감정이 둔감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비록 도깨비처럼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큰 주제인 드라마보다는 글로리처럼 큰 주제는 따로 있고 약간의 사랑이 구석에 조금씩 나오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지만, 나의 감정지수는 평균이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지 싶다.


왜냐하면 나는 공감하기를 좋아하고, 비교적 공감에 익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감(共感)은 상대방 입장에서 경험한 바를 이해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지레 생각해서 그 당시에는 말하지 못하거나 뜨뜻미지근하게 표현해놓고 나서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런데 주변에 어떨 때는 시원하게(남일 경우), 어떨 때는 서운하게(나일 경우) 상대방의 기분이나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마냥 부럽지는 않지만 오늘은 내 기준에 따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서도 뒤늦게 후회하지 않을 나만의 대처방법을 정리해 봤다. 다만,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말은 고민할 필요 없이 표현하면 되지만 기름끼 빼고 담백하게, 가짜가 아닌 진짜 감정으로 표현하기로 정리.


1. 상대를 좋아해서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 온전히 내 기준과 경험에 한하겠지만 평소 관찰하고 있다가 좋은 기회를 만들어 작은 부분이든, 큰 부분이든 종합적으로 정리한 후 이야기한다.

 

2. 상대에 대한 감정이 좋지도, 싫지도 않고 중립적이라면 : 

   2-1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만 짚고 넘어간다.

   2-2 같이한 세월이 짧아 아직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 작은 부분은 바로 이야기하고, 큰 부분은 생각을 정리한 후 이야기한다.


3. 상대를 싫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면 : 

   1-1 나를 건드리지 않거나 함께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 가능한 거리를 두고 멀리 한다.

   1-2 나를 자극하거나 함께 일해야 한다면 : 가능한 즉흥적인 대화는 자제하고, 계획적인 대화만 한다. 상대의 말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여 대처 시나리오를 만들어 둔다.


공감하기를 좋아한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 철저히 내 입장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 논리를 켜켜이 쌓아두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건강하고 싱싱한 마음으로 공감을 지속하기 위한 나만의 정리라고 그렇게 변호하고 싶다. 인생에 몇 안 되는 그 무엇(의미 있는 존재)과의 공감을 위해 감정 호수에 바닥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AI 로봇이 먼 미래에 나온다면 이런 로봇은 상처받지 않고 무한한 공감 능력을 보일지 그리고 한 번에 얼마나 많은 그 무엇(의미 있는 존재)과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영화 'Her'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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