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조만간 이사 갈 동네 근처에는 얼마간 토요일마다 올랐던 작은 산이 있다. 주욱 이어진 계단 끝에 있는 정자가 첫 번째 산의 봉우리이고, 이곳을 지나 능성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또 다른 작은 산의 정자가 나온다. 남편과 나는 그 두 번째 정자를 반환점 삼아 돌아오는 코스로 등산을 자주 했다. 한동안 그 동네에 갈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간 어느 날이었다. 첫 번째 정자를 가쁜 숨으로 찍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 번째 정자를 향하는 길에서 우리와는 반대 방향에서 오시는 할머니를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우와! 참 고우시다'라는 속말이 나왔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에서도 또 그 할머니를 만났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저 할머니 정말 고우시지?"라는 물음에 "아까 뵈었는데, 참 고우시네"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가 심윤경의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 등장하는 할머니를 산에서 마주쳤다면 우와! 고우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윤경 작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고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즉각적이면서도 화려한 말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넘쳐나고 있다. 또한 입에 꿀 바른 듯 말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세상이다. 하지만 심윤경 작가의 할머니처럼 투박하지만 뭉근한 사랑과 신뢰의 말 한마디는 험난한 우리 인생 고비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내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어머님 댁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서 지금까지 앞동 뒷동 이렇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아들은 지금까지도 평일 저녁에는 할머니 집에 가서 갓 지은 밥을 먹는다. 아이가 저녁을 맛있게 먹은 날이면 할머니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드신다. 어쩌다가 아이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날이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밥 잘 먹는 한약이나 보약이나 이런 이야기를 아직도 하신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시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가신다. 그런 만큼 이별의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된다. 부디 주셨던 사랑이 슬픔보다는 세월이 지나 어른이 돼 가면서 만나는 어려운 순간을 버틸 에너지이자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운 분들의 기억으로 세상을 곱게 바라보면 좋겠다.
곱디 고운 것들은 우리 몸속 세상에도 많다.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명언을 남긴 야구선수 요기 베라(Yogi Berra)는 과학적으로도 큰 영감을 주는 “주목하면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You can observe a lot by watching).”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명언을 극단적으로 실천한 연구결과가 있다. 연구팀은 2년 동안 마우스의 모낭 하나하나에서 멜라닌 세포를 생성하는 성체줄기세포를 그것도 단일세포 수준에서 끈질기게 관찰한 결과, 지금까지 적용되었던 기본 원리(dogma)를 흔드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유류의 성체줄기세포는 일반적으로 한 부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제와 분화를 하는데, 멜라닌 세포를 생성하는 성체줄기세포(McSCs, melanocyte stem cells)는 모낭을 오르내리며(yo-yo) 움직인다는 차이점 하나를 발견하였다. 더 놀라운 차이점으로, 성체줄기세포는 분화하는 한 방향만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분화 방향을 거꾸로 되돌려 미분화된 줄기세포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번에 발견한 성체줄기세포의 물리적 이동과 분화의 유연성은 지금까지 적용되었던 기본 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이며, 더 나아가 새치, 흑색종과 같이 멜라닌 생성과 관련된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연구팀은 ‘노화가 McSC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노화된 마우스의 모낭도 분석하였는데, 노화된 마우스에서 McSC 이동이 감소하여 멜라닌 세포가 적게 생성되어 흰털이 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만약 McSC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개선한다면 흰머리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가능성을 주목하는 지점이다. 또한 연구팀은 McSC가 생명을 위협하는 피부암인 흑색종(melanoma)에 있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McSC의 분화 유연성이 오히려 흑색종의 치료를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McSC를 조기에 노화시켜 세포의 복제를 중단하면 암으로 이어지는 돌연변이 발생 또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성체줄기세포 행동에 관한 기본 원리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이러한 상황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 몸을 이루는 수조 개의 개별 세포 하나하나를 추적 관찰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세포 라벨링 방법으로 세포와 그 후손 세포를 표지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적하는 계통 추적(lineage tracing) 기술과 살아 있는 마우스에서 피부의 동일한 부분을 지속 관찰하는 생체 내 이미징(intravital imaging) 기술을 조합하으며, 단일세포 RNA 시퀀싱을 통해 이동하는 위치마다 세포의 분화 정도를 분석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기술들은 인체 내 다양한 조직과 장기에서 성체줄기세포 집단이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 지원할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질병 극복 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지점이다.
McSC는 모발 성장주기의 휴지기(telogen) 동안 모낭의 돌출부(bulge)와 모발 배아(hair germ)에 미분화된 상태(undifferentiated McSC)로 머물러 있다가 모발 성장이 시작(anagen onset)되면 모발 배아가 아래쪽으로 확장 → McSC가 중간 정도 분화(intermediate MsSC)되면서 확장된 모발 배아 아래로 이동 → 성장기 중후반(mid-to-late anagen) 단계에 McSC는 새로운 모발이 자라는 모낭에서 성숙한 멜라닌 세포(mature melanocyte)로 분화되거나 미분화되어 모낭의 돌출부로 다시 올라가 모발 배아로 이동
출처 : Nature, Yo-yoing stem cells defy dogma to maintain hair colour, 2023.4.19
나는 평소에 작고 귀여운 것에 마음을 잘 빼앗기는 사람이고, 또 '예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곱다'라는 말을 잘하지 않았는데, 산에서 뵌 그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온 '곱다'라는 말이 '예쁘다'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그날 그 산을 내려오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과 기준에 따른 차이로, 첫 번째 [①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나이(사람)에 따라 다르다. '예쁘다'는 꼬물꼬물 태아 초음파 사진에서부터 많이 잡아도 나보다 10살 정도 더 많은 나이까지인 반면에, '곱다'는 말은 나보다는 나이가 뚜렷하게 많아 보이는 분들이 대상이다. 그다음은 보는 대상(사람은 빼고)에 차이가 있다. '예쁘다'는 옷, 그릇, 가방과 같은 물건을 보았을 때 나오는 말인 반면에, 생각해 보니 '곱다'는 단풍이나 꽃, 해 질 녘 하늘과 같은 자연을 보았을 때 나오는 말이다.
두 번째 [② 사용 빈도]인데, 나는 '예쁘다'를 자주 말하는 편이다. 반면에 '곱다'는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살면서 아주 가끔 말한 것 같다.
세 번째로는 [③ 단어의 속성]인데, 산에서 만난 할머니를 통해 겉말과 속말이라는 표현이 떠오르게 되었다. '예쁘다'는 보면 바로 나오는 겉말일 경우가 많은 반면에, '곱다'는 포장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속말이 경우가 많다는 나의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예쁘다'는 나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 물건을 보면서 자주 사용하는 겉말인 반면에 '곱다'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 자연을 볼 때 가끔씩 떠오르는 속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쯤에서 직업병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되었던 그 할머니처럼 "누군가 나를 산에서 마주쳤을 때 '곱다'라는 속말이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새치가 일상의 큰 불편인 나에게 멜라닌 세포를 생성하는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로 새치 염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