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프랜 '순수(Purity)'
조너선 프랜즌의 '순수(purity, 퓨리티)'라는 소설의 제목을 내 나름대로 편집해 본다면 '잃어버린 순수(purity, 퓨리티)를 찾아서'로 하고 싶다. 소설을 읽다 보면 순수를 2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 대놓고 순수(퓨리티)다. 다른 하나는 순수한 사람이네, 순수한 마음이네, 할 때 흔히들 말하는 순수이다. 소설은 퓨리티라는 주인공이 아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등장인물들의 순수를 이야기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순수에는 9개나 되는 서로 다른 뜻이 있다. 여러 의미 가운데 이 소설에서 읽히는 순수는 '(1)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이라는 뜻을 지닌 순수(純粹)라고 생각한다. 1번은 순도 100%와 같이 확인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특성을 말하며, 2번은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의식에 대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2번의 순수가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재미있게도 퓨리티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통해 여러 등장인물의 순수를 보여준다. 한 때는 순수한 의도(목적)이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했다던지, 그러다가 다시 찾게 되었다든지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순수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 계기를 통해 순수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순수는 나 자신과 내면을 향하기보다는 타인과 외부를 향하는 속성이 강한 단어인 것 같다. 순수는 스스로 존재하기보다는 어딘가에 포함되거나 담겨야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과 행동에 담겨 전달되기 쉬운 순수는 타인과 외부를 향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나를 위한 이기심이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인간일지라도 나 자신과 내면을 향하는 순수가 있지 않을까? 타인과 외부를 향한 순수는 외부적인 요인이나 사건에 의해 가끔씩이라도 느낄 때가 있지만, 나 자신과 내면을 향한 순수는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하는 것 같다. 어느 타이밍에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뇌의 겉에만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소일거리도 좋지만, 뇌 속 깊은 곳을 들어가 흔들어보는 시간을 맘 잡고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앞과 뒤에 이렇다 할 작가의 말은 없지만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인용한 이런 글은 있다. "... 늘 악을 원하면서도 도리어 항상 선을 행하게 되는 세력의 일부일지니..." 순수했던 시작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불순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세상에서 작가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을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살다 보니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순수함만은 아닌 것 같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유전자를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최근 옥수수를 가지고 한 연구에서 예전에 잃어버린 유전자를 다시 넣어주자 단백질 함량이 높아지는 등 우수한 성질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옥수수를 너무 좋아해서 김 폴폴 내는 옥수수 트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연구결과이다.
옥수수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테오신트(teosinte)라고 불리는 야생종을 개량해서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재배종(corn)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널리 재배되는 재배종(corn)은 야생종(teosinte)에 비해 옥수수 알갱이에 함유된 단백질이 1/2 정도로 적은데, 옛날 옛적 옥수수를 재배해 오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 함량보다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알갱이 크기 중심으로 종자를 선택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재배 과정에서 잃어버린 유전자, 즉 단백질 함량을 높이는 유전자를 야생종에서 찾아내어 재배종에 다시 넣어준다면 단백질도 풍부하고, 알갱이 크기도 큰 옥수수 품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이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옥수수를 넘어서 오랜 기간 인류가 재배해 오면서 사라지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유용한 유전자를 찾아내서 작물 육종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가정에 기반하여 실험한 연구팀이 있다.
연구팀은 옥수수 야생종과 재배종의 교배체를 만들어 유전자를 서로 섞고, DNA 염기서열과 형질을 분석하여 단백질 함량만 다르고 그 외 형질은 동일한 세대가 나올 때까지 교배하였다. 최종적으로 9세대까지 내려가자 3개의 유전자가 남았고, 그중에서도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asparagine)을 합성하는 효소(asparagine synthetase 4)를 코딩하는 유전자가 유력한 후보로 선정되었다.
유력한 후보로 선정된 야생종의 유전자를 재배종에 도입한 결과, 옥수수 알갱이의 개수나 크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으나 알갱이 내 단백질 함량이 25~31% 정도 증가하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질소 활용 효율 또한 높아져 비료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질소 함량이 높게 유지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 단백질 생산 과정에서 소모되는 탄소의 양과 자원이 적어 환경에도 유익하며, 최근 들어 식물 단백질을 선호하는 경향은 이러한 연구결과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있다. 또한 식물 재배 과정에서 질소 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에 토양과 물을 오염시켜 환경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옥수수 야생종에서 찾은 유전자를 통해 이러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야생종 유전자 도입으로 옥수수의 크기(a)나 무게(b)는 변하지 않지만, 단백질 함량은 증가(c)된 연구결과>
출처 : Nature, THP9 enhances seed protein content and nitrogen-use efficiency in maize. 2022.11.16
나에게 정말 어려운 단어였던 순수로 다시 돌아와서 좀 더 내 관점에서 정리하고 싶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의도(목적)를 가지고 움직인다. 유전자에 생존과 번식에 대한 의도(목적)가 이미 코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는 본능적인 의도로 순수하고, 불순하고를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네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시길 추천)을 공격해서 먹어치우는 상어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듯이 자연의 생태계(인간 제외)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은 순수한 본능이라고 본다.
그런데 인간의 세계로 순수를 가져오면 복잡해진다. 착한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별하기 어렵고, 점점 더 사익과 공익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보이스피싱과 같이 현대 사회의 교묘한 범죄로 인해 결코 나쁜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는 행동이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고,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공익이 내일의 사익이 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나와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 집단에 대해서 순수 자체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리석은 믿음에 기반한 행동을 순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매우 위험하다. 단순하고, 투명해 보이는 순수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나의 생각은 삼일절이 낀 연휴 기간에도 정리가 되지 않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 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어른 김장하'(네플릭스에서 보았으며, 이 또한 추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순수라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수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김장하 할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은 순수의 모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비록 김장하 할아버지처럼 많은 돈을 벌어 욕심 없이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타인과 외부를 향해서는 나를 내세우기보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먼저 세우는 것에서 나의 순수를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김장하 할아버지의 가르침 하나 더! 산을 오를 때 되뇌면 좋은 멘트 -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하면서 나 자신과 내면을 향하는 순수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