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초상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 이전의 나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 존재했다.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나오기 전,
작고 투명한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고.
1985년, 시대는 서늘했고, 아빠와 엄마는 차가운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내게 종종 "너는 늘 몸을 염려해야 했던 아이였다"고 담담히 들려주곤 했다.
투명한 벽에 둘러싸인 인큐베이터 안, 작은 생명을 가둔 그곳은 희미한 빛과 규칙적인 기계음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고. 오직 숨을 쉬는 것만이,
그 어린 날의 유일한 존재 방식이었으리라.
엄마는 매일 밤, 병실 창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오직 나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부디, 무사히 살아나게 해주세요.” 작디작은 손, 겨우 움찔거리는 발, 간신히 뛰던 심장 하나까지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그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나는 엄마의 말처럼 조용히, 그리고 더디게 삶의 첫 계단을 올랐다.
엄마의 손길은 그 투명한 벽을 넘어 내게 닿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낀다.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그 기도가, 그 마음이 보이지 않는 막처럼 내 미약한 몸을 감싸 안았음을.
기계음 속에서 울리던 내 작은 심장이 사실은 엄마의 불안과 사랑, 그리고 간절한 염원에
맞닿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전부였을까, 아니면 이토록 간절히 지켜야 했던 작은 존재였을까.
그녀의 말과 표정 속에서 나는 늘 답을 찾았다.
세상의 끝, 삶의 경계선에서도 엄마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고.
그리고 마침내 나는 엄마의 품으로 태어났다.
엄마는 세상이 너무나 밝고 동시에 차갑게 느껴졌다고 했다.
낯선 공기는 인큐베이터 속보다 더 무겁게 폐를 짓눌렀고, 숨 쉬는 것마저 힘겨운 시간이었다고.
그러나 인큐베이터 밖에서도 엄마의 기도와 손길은 끈질기게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뿌리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내가 스스로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미 세상과
첫 눈맞춤을 하고 있었다.
작은 인큐베이터 안, 기계음과 희미한 빛 속에서도 사랑과 기도가 나를 지켜주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던 내게, 첫 번째 생일의 기록은 사치였다.
나는 돌사진이 없다. 엄마는 내게 자주, 그리고 늘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아빠와 엄마가 상경하여 도시의 낯선 틈바구니에서 고된 삶을 시작하느라, 그 시절에는 돈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한 조각 없었다고. 그리하여 나는 어떤 눈에 보이는 이미지도 남기지 못한 채, 첫 번째 생일을 묵묵히 지나갔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작은 한숨과 함께 "미안하다"고 나지막이 속삭이곤 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몰랐다.
그 미안함의 무게가 엄마에게 얼마나 컸는지. 그때의 나는 단지 웃고, 울고, 먹고,
그리고 다시 잠드는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사진'은 없었지만, 내 안에는 더 선명하고 생생한 초상화가 그려졌다.
골목 사이를 스치는 바람, 훅하고 들어오는 먼지 냄새와 달콤하게 섞인 빵 굽는 냄새, 그 일상 속에서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 아빠의 장난스런 눈빛, 매일 밤 잠들기 전 귀를 기울이던 이야기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담은 살아있는 기록이었고, 어떤 인화된 사진보다도 진실된 나의 '초상화'였다.
엄마는 '사진이 없다는 건 평생의 죄책감과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지만, 나는 이제 안다.
물질적인 한 장의 사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은, 날마다 내 곁에서 숨 쉬고, 함께 웃고, 말없이 걱정하며 나를 지켜주었던 그 지극히 평범하고도 위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돌사진은 없지만, 내 안에는 매년 쌓이는 사랑의 기억과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사진 속에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숨 쉬고, 울고, 뛰고, 달리고, 자라는 순간순간의 움직임,
그 자체가 바로 나를 빚어낸 진정한 초상이다.
인큐베이터 속 기도로 시작된 삶의 여정, 그리고 사진 한 장 없이 오롯이 사랑으로만 그려진 유년의 기억.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 삶의 모든 부족함은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음을.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엄마와 아빠의 따뜻한 마음, 골목의 먼지 냄새, 그리고 손끝에 남은 따스한 온기,
이 모든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바로 온전한 나의 '초상화'였다.
나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기억들로 채워진 '나'라는 초상을 조금씩 완성해가며,
내 발걸음을 배우고 엄마 아빠의 깊은 시선 속에서 세상과 비로소 진정으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