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시절의 시작
중학교 입학 날, 나는 낯선 교복에 몸을 넣었다.
새 옷이 주는 설렘보다는 낯섦이 앞섰던 헐렁한 천. 소매는 손등을 삼키고,
바지는 발목 위로 쓸려 내려갔다. 갓 부화한 새처럼 어설픈 내가 낡은 거울 속에서 덩그러니 비쳤다.
그때 엄마는 묵묵히 내 뒤에 서서 나를 오래 바라봤다.
"다 컸네, 우리 아들."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 품은 봄 햇살 같아 따뜻했고, 굳게 닫혔던 내 마음의 문이 스르륵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그 순간만큼은 다 내 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따뜻한 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아빠의 도박은 집안을 잠식해갔다.
매일 밤,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던 엄마의 낮은 한숨 소리가 벽을 스며 내 어린 심장을 파고들었다.
길고 낮은 한숨은 마치 오래된 나무가 속부터 천천히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그 끔찍한 소리가 고요한 밤의
집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결국 아빠의 욕심에 전세 등기마저 넘어가야 했던 어느 날, 엄마의 눈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집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었다.
엄마는 온몸으로 그 무게를 감당했다.
어린 내가 잠든 새벽, 엄마는 집을 나섰다. 훗날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아빠가 도박을 하던 어두컴컴한 지하 창고. 그곳은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하고 욕심으로 찐득하게 살찐 수컷들의 탁한 웃음소리와 욕설이 난무하는, 인간의 밑바닥을 응축해 놓은 듯한 지옥도였다고 한다.
그 야비한 아수라장 속에서 엄마는, 지독히도 연약한 여자 몸으로 홀로 서서 전세 등기를 찾아왔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엄마의 얼굴에서 승리자지만 불안한 악착같은 미소를 보았다.
등기를 되찾아 집으로 돌아온 그날, 엄마는 우리를 보며 기어코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미소 속에서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던 서러운 눈물을 보았다.
세상에 나약한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아야 했던 엄마는, 나에게 그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섬뜩한 그림자를 읽었다.
그날 엄마의 작고 여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거대한 무게가, 어쩌면 그녀의 명줄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음을
어린 나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여린 내 어머니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찾아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리에 나붙은 붉은 전단에는 ‘정리해고’라는 글씨가 핏빛처럼 번져 있었고,
은행 앞에는 길고 긴 줄이 그림자처럼 늘어섰다.
신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도 소식을 전했고, 시장 골목을 채우던 활기 넘치던 얼굴들은 하나둘
검게 그을려갔다. 불안과 절망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아빠는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회사는 이미 문을 닫았고, 그는 갈 곳을 잃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술기운에 젖은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고, 그 옆에서 엄마는 묵묵히 밥상을 차렸다. 텅 비어버린 밥상 위에, 그녀의 눈물로 빚은 듯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고, 우리 집은 세상의 냉혹함과 함께 더 깊이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아직 중학생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었다.
세상의 냉혹함과 엄마의 처연한 뒷모습, 그리고 삶의 바닥이 얼마나 시린지 한꺼번에 내 안에 새겨졌다. 때로는 눈물보다 더 날카롭게, 때로는 침묵보다 더 무겁게. 모든 것이 그대로 각인되었다.
그 시절을 건너며 나는 배웠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버티는 것이며, 어떤 겨울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나지 않는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온몸으로 품고 있었다.
그 품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