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무게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처음으로 급식실 카드 태그기를 마주했다.
"삑— 급식비 미납."
짧고 냉정한 기계음이 내 배보다 먼저 가슴을 쳤다.
급식실 안은 갑자기 고요해진 것 같았고, 모든 시선이 내게 쏠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급식실 아주머니는 조용히 먹어도 된다고 작게 말했지만,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이 내 등에 칼날처럼
차갑게 박혔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그 이후로 애써 밝은 척 친구들 곁을 떠나
혼자 남아 점심을 거르곤 했다. 허기진 배를 쥐어짜는 굶주림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그 순간 산산조각 나 남몰래 무너져내리는 자존심이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늘 상위권에 머물던 성적표는 단숨에 바닥에 처박혔고, 나의 공부는 의미를 잃어갔다.
어느 날 저녁, 엄마는 잔뜩 주눅 든 내 옆에 조심스레 앉아 물으셨다.
"무슨 일 있니?"
그 물음은 내게는 채찍질 같았다.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분노와 설움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렀다.
"밥도 못 먹는데, 무슨 공부예요."
그 말은 내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 엄마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했고, 그녀의 가슴을 깊게 찌른
단도가 되었다. 뒤늦게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갔다.
갈 곳도, 생각도 없이 그저 달렸다. 이른바 가출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밤은 차가웠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냉정했다. 겨우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선 순간, 차갑도록 고요한 집과 마주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싸늘한 시선이 아니었다.
내 방 침대 맡에 놓여있던 한 장의 구겨진 편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여서 미안하다'고 쓰인 엄마의 짧은 문장이었다.
그제야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와 소리 없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그 밤, 나는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다시 버텨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 무렵, 나의 처지를 아셨던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는 근로장학생이 되었다. 수업료가 면제되는 대신, 방과 후 학교 구석구석을 쓸고 나르는 일이 내 몫이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 복도를 쓸고, 화장실을 청소할 때마다 느껴지는 수치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남들의 눈을 피해 급식 대신 청소를 해야 하는 현실은 때로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밤새도록 엄마의 편지를 되뇌었다.
그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과 미안함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매 순간 그 수치심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다시 버티는 법을 배웠다. 나의 자존심은 짓밟히는 듯했지만, 동시에 엄마의 사랑으로 채워져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버티던 내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나 고2때 선배들의 수능이 끝난 다음 날, 교실 복도에는 선배들이 내놓고 간 참고서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근로학생들의 손에 실려 나오는 그 무겁고 커다란 박스 속에서, 버려진 책들 사이로 나는 아직 깨끗한 책들을 주워 들었다. 먼지 쌓인 교실 바닥에서 발견한 그 책들은 단순히 버려진 고물이 아니라,
내게 건네진 또 다른 시작이자 희망의 메시지였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허기진 굶주린 점심 대신, 깨끗한 버려진 책들로 내 지친 허기를 달랬다.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다.
때로는 세상의 시선과 차가운 현실이 자존심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때로는 그 무너질 것 같은 자존심이,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사랑이 나를 지탱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나의 자존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삶을 견디게 하는 무거운 추이자,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굳건한 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