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7화

겨울의 그림자

by 송필경

수능이 끝난 뒤, 성적은 서울로 가는 문턱을 겨우 넘을 만큼은 되었다.

하지만 그 문은 돈이라는 굳건한 빗장으로 닫혀 있었다.

나는 서울의 꿈을 접고, 대전의 한 사립대학으로 향했다.

조건은 장학금.

성적을 유지해야만 학비가 면제되는 제도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깊이 병들어 있었다.

한참 아래라 여겼던 친구들이 저마다 '더 나은' 이름표를 달고 서울로 향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시샘과 질투가 핏줄을 타고 독처럼 번졌다.

그 독은 대학 생활의 작은 설렘마저 뿌리째 흔들었다.

껍데기만 남은 자존심은 한껏 날을 세웠고, 스스로 고립을 택한 나는 강의실과 허름한 자취방 사이를

무미건조하게 오가며, 내부의 불만과 독기를 점점 키워갔다.


그해 겨울, 엄마는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나는 여전히 세상만사에 심드렁한 태도로, 툴툴거리며 엄마의 뒤를 따랐다.

대전의 하늘은 잿빛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고, 바람은 마치 칼날처럼 살을 에어왔다.

나는 그저 일상적인 엄마의 건강 검진이려니,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 의사의 말이 칼날이 되어 날아들었다.

왼쪽 사타구니에 부풀어 오른 종양.

그리고, 단출하지만 너무나도 무거운 진단.

“임파선암입니다.”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리 사라졌다. 귀가 먹먹해지고, 주변은 먼 안개 속처럼 웅웅거릴 뿐이었다.

엄마는 그저 흙빛으로 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마 그 표정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 찰나, 내 안에 가득했던 어줍잖은 질투와 분노는 마치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단 한글자만이 심장을 꿰뚫었다.

'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오히려 담담히 말했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은 나를 향한 위로라기보다는, 차갑게 얼어붙은 스스로의 마음에 건네는 간절한 주문처럼 들렸다.


느린 발걸음으로 병원 문을 나선 우리는, 잿빛 겨울 거리를 한참을 걸어왔다.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침묵만이 흐르는 그 길 위에서,

우리 둘은 각기 다른 깊이의 속울음을 꾹꾹 삼키고 있다는 것을.

길가에는 이름 모를 메이커 의류 매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늘 대학에 와서 입을 옷이 없다며 투정 부리던 나를 기억하셨는지,

엄마가 잠시 걸음을 멈추며 조심스레 물었다.

“갖고 싶은 옷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꿀렁였다. 기어이 참아낸 눈물이 목울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했다.

찬 눈발이 하염없이 흩날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어깨 위에는 쌓이지 않았다.

닿자마자 미련 없이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우리 마음속에 차오른 눈물이 바람에 스며들듯,

허공에서 깨져 부서지는 눈송이처럼 말이다.


그 겨울,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차가운 것은 눈이 아니라,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슬픔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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