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괜찮을 거야"라는 담담한 한마디가 되려 내 안을 더욱 깊이 얼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잿빛 겨울 거리의 차가운 눈발이 우리의 어깨 위에 쌓이지 못하고 허망하게 녹아내리던 것처럼,
내 안에 가득했던 시샘과 질투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지난 몇 달간 나를 옥죄던 모든 불만과 독기는, 엄마의 '암'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내 투정은 사치였다.
집은 병원만큼이나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어둠이 내린 거실에 앉아 서로에게 차마 던지지 못하는 말들만이 허공을 맴돌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 식탁이었지만, 숟가락조차 들기 어려웠다.
나는 그저 밥알을 헤적이며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흙빛으로 변했던 엄마의 얼굴은,
어느새 미약한 체념이 드리워진 듯 보였다.
나는 엄마의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밤늦도록 엄마는 아빠와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의논했다. 나는 이불 속에 파묻혀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대학병원', '수술비', '퇴직금' 같은 단어들이 자꾸만 귓가에 박혔다.
스무 살 아들이 듣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의 병은, 그저 엄마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가족 전체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싸움의 한복판에,
철없는 스무 살 아들인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다시 나를 불렀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엄마는 장학금을 받으며 턱없이 부족한 용돈으로 버티고 있는 나의 지갑에,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라며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쥐여주셨다. 그 차가운 지폐의 감촉이, 엄마의 병만큼이나 내 가슴을 시리게 했다.
나는 그 지폐를 받은 손을 한참 동안이나 펴지 못했다.
서울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세상 다 무너진 것처럼 굴었던 나의 치기 어린 방황이, 엄마의 그 작은 지폐 몇 장 앞에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련하게 느껴졌다.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겨울, 나를 스치던 차가운 바람은 엄마의 병을 알려주기 위한 겨울의 그림자였고, 내가 그동안 느꼈던 시기와 질투는 어린아이의 허상이었음을.
그 겨울, 내 가슴에는 철컥, 소리를 내며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박혔다. 차갑고도 날카로운, 처음 느껴보는
책임감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만사에 심드렁한 스무 살이 아니었다. 엄마의 병이, 나를 어른이 되는 길목으로
잔인하게 밀어 넣고 있었다. 나는 그 무거운 철을 짊어질 준비를 해야 했다. 아직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씩 어른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 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은 내게 좌절의 상징이자 미련 가득한 동경이었으나, 이제는 엄마의 목숨이 달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필연이 되었다.
대전역 플랫폼에 섰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손에 쥔 기차표는 종잇조각처럼 가벼웠으나, 그 무게는 내가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옆에 선 엄마는, 이제는 잿빛이 아닌 병색 짙은 얼굴로 창백하게 서 있었다.
"괜찮을 거야." 그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작아졌지만, 그 안에는 꺾이지 않는 어떤 굳건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돌려 엄마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서울'로, 이제 엄마의 삶을 위해 가야 한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처럼
걸려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엄마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았다. 빌딩 숲은 차갑고 높았고,
사람들의 걸음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다,
병원 셔틀버스를 겨우 찾아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서울의 풍경은, 내가 꿈꾸던 화려한 대도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차갑고, 거대하고, 나의 존재는 먼지보다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병원 로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세계였다. 대전의 작은 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 소독약 냄새를 뚫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죽음의 그림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불안한 표정.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이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며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뒤로 겨우 잡은 예약증을 손에 쥔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열 속으로 들어섰다.
모든 과정은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며, 느릿했다.
엄마의 몸에서 자라나는 종양이, 어서 빨리 검진과 수술을 요구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거대한 병원 시스템은 그 속도와 상관없이 흘러갔다.
엄마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가끔 힘겨운 숨을 내쉬며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댔지만,
단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옆에 앉아 나는 내 심장을 갉아먹던 사소한 질투와 패배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친구들이 서울로 가든, 가지 않든, 내 미래가 어떻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엄마.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 엄마가 내 옆에 앉아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이 내게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날, 서울의 차가운 공기는 비수처럼 내 심장을 찔러왔다.
스무 살, 철이 든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나를 짓누르던 그 '철'의 무게는 이제 차가운 병원의 철제 의자와 수액 걸이, 그리고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는 내 발걸음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이 차갑고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나는 엄마의 손을 놓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버텨야 했다. 비로소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그저 '학점'이나 '자존심'이 아니었음을. 엄마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