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9화

수술전날의 약속

by 송필경

서울의 낯선 병원 복도는 겨울밤보다 더 차갑고, 더 길었다.

쓸쓸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기계음은 끊임없이 삑삑거렸다.

그날 저녁, 엄마는 수술을 하루 앞두고 나를 불렀다.
병실 침대 머리맡에는 희미하게 떨리는 수액줄이 걸려 있었고,
창밖의 불빛은 멀리 떨어진 별처럼 아득했다.

엄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숨을 고르는 듯, 차분히 나를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들아,
너는…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공무원일까.
엄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너무도 선명했다.


나는 말없이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병색이 짙어, 살빛은 이미 흙빛에 가까웠다.
눈가의 주름은 깊게 패였고, 그 속에는 두려움보다도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아빠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힘들게 살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직업 가졌으면 좋겠다.
엄마 마음이 그게… 제일 편할 것 같다.”

엄마는 차분히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엄마의 몸속 고통만큼이나 절박한 울음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이 막히고, 목구멍에 큰 돌덩이가 걸린 듯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고개만 끄덕이며, 속으로 다짐했다.
엄마, 내가 약속할게요. 당신이 원하는 그 길, 반드시 걸어낼게요.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장에 비친 희미한 그림자를 보며 수없이 중얼거렸다.

“공무원이 되겠다. 반드시 되겠다.”


그리고 다음 날.
수술은 오전 아홉 시에 시작되었다.
의사는 네 시간쯤이면 끝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붙잡듯 마음속에 새겼다.
네 시간만 참으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수술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끝내 장장 일곱 시간을 넘기고서야 수술실 문이 열렸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대기실의 낡은 의자에 앉아 신문 기사를 읽는 척했지만,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가락은 떨렸고, 종이 위에는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다.


나는 몇 번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좁은 칸에 몸을 숨기고, 소리 없이 엎드려 울었다.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며,
스무 살이란 나이에 맞지 않는 절규를 삼켜야 했다.


왜 우리 엄마여야 하는가.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를 붙들었다.

엄마가 내게 바란 단 한 가지,
그 소원을 꼭 이루겠다.


철은 무거웠다.
철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 무게와 차가움 속에서,
나는 스무 살의 어른이 되어갔다.


수술실에서 엄마가 마침내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온몸이 탈진한 듯 휘청거렸지만,
마음 한편에는 분명히 새겨진 것이 있었다.


엄마,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나는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내 생의 목표로 삼겠습니다.

그 순간, 내 스무 살은 돌이킬 수 없이 철이 들어 있었다.

무겁고 날카로운 철, 그러나 그 철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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