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1화

강변 그리고...

by 송필경

엄마가 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기적처럼 소생했을 때, 나의 세상에도 거짓말 같은 햇살이 들었다.

곧이어 날아든 공무원 합격 소식. 핏기 잃었던 엄마의 얼굴에 번졌던 그 환한 미소는, 병상 위에서도

가장 눈부신 꽃이었고, 우리는 믿었다. 비극은 이제 끝나고, 영원히 행복할 시간만이 남았노라고.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엔 여린 링거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그 촉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희망이었다.

그 기적의 믿음 속에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다. 매 주말이면 아빠와 나, 셋은 이름 모를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다. 병마에 시달린 엄마의 야윈 몸에 풀뿌리 하나라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가파른 길도 마다치 않았다. ‘상추’와 ‘깻잎’ 외엔 몰랐던 내가 엄나무, 옻나무, 오가피를 외우고

흙 묻은 뿌리를 캐냈다. 땀과 웃음, 그리고 애끓는 간절함이 뒤섞인 그 주말 여행들은, 투병의 그림자 아래

피어난 우리 가족의 가장 순수한 시간이었다. 아빠의 너스레 속에서도 엄마의 손은 늘 나의 것이었다. 우리는 약초 캐는 행위 속에 사라진 삶의 기운을 애써 그러모으는 중이었다.

하지만 희망은 가끔 잔인한 얼굴을 한다. 몇 달간의 평화 끝에, 엄마의 몸은 다시 미세한 균열을 보였다.

병원 문을 나설 때 의사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전이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불안한 예고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마지막 약초를 찾아 나섰다. 그날따라 발걸음이 무거워, 나는 늘 가던 숲길 대신

홀린 듯 한적한 강변으로 차를 몰았다.

바람은 비린내 대신 싱그러운 흙냄새를 싣고 왔고, 멀리 보이는 물비늘은 햇살에 부서졌다.

이름 모를 야생화 몇몇이 여린 숨을 쉬는 그곳에서, 엄마는 말없이 강물을 바라보셨다. 이윽고 엄마의 입술이 가만히 열렸다. "여기, 참 좋네. 강이 좋구나. 이렇게 강물이 일정하게 흘러가고, 산과 물이 어우러져 있으니 마음이… 마음이 참 풍요롭다." 그 순간, 엄마의 눈빛은 이 세상을 초월한 듯 고요하고 깊었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했다.

나는 번개처럼, 아니 숙명처럼 깨달았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약초가 아니라 이 고요하고 풍요로운 경계,

바로 이 강변이라는 것을. 엄마의 마지막 바람이 담긴 그 눈빛 앞에서, 나는 뜨거운 맹세를 뱉었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외쳤다. "엄마, 내가 여기 꼭 집 지어줄게. 하얀 벽돌로 올린 예쁜 집 지어서,

엄마랑 아빠랑 셋이 여기서 살자. 강 보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 땅 사고 집 짓는 동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알았지? 엄마야, 강변 살자!" 엄마는 가늘게 떨리는 내 손 위로 당신의 따스한 미소를 얹어주셨다.


그 미소 속에 깃든 깊은 기다림과 내가 약속했던 하얀 집의 꿈이, 아직은 가려진 시간 속에서 우리를 향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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