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2화

나비수의 거짓 약속

by 송필경

하얀 벽돌집의 꿈이 막 움트던 그날 이후,

엄마의 암투병은 예고 없이 더 거친 파도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기적은 종종 제 길을 잃은 채 돌아서는 법.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절망 속에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이한 형체의 약초들을 찾아 헤매던 산과 들도 이제는 더 이상 내게 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는 사람이라 소개받았던 한 명이 내게 비밀스러운 말을 건넸다. 깊은 산속 샘물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다는 '나비수'. 전설 속 나비의 날개짓처럼 병마를 몰아내는 신비로운 물이라 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효험을 장담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그것이 지푸라기가 아닌 동아줄처럼 보였다. 남은 희망의 불씨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난생처음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엄마의 미소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이깟 돈이 문제일까.

나의 모든 것을 걸어 그 물을 손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께 공수해온 물을 건넸을 때,

엄마는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평범한 물이었지만,

내 눈엔 그것이 생명의 샘물 같았다.

엄마가 한 모금 한 모금 정성껏 물을 넘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오랜 죄책감과 무능함을 드디어 씻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젠 정말 엄마를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짧지만 눈부신 희망의 시간이었다.

정확히 복용한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심코 집어 든 신문에서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나비수’,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잔혹한 글자들 – '허위 과장 광고', '수십억 대 사기', '피해 속출'.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뒤이어 휴대폰이 울렸다.

약을 소개시켜준 사람의 미안하다는,

그리고 곧 끊긴 문자 메시지.


죽을 것 같았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손에 들린 신문은 바스락거리는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내 안의 모든 것은 묵직한 바위처럼 짓눌러 왔다.

그제야 내가 믿었던 동아줄은 그저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찢기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또 한 번 기약 없는 희망을 주었고,

그 희망을 내가 직접 절망으로 바꿔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아직 주방에 남아있을 그 '나비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죄인의 심정으로, 나는 차마 그것을 치우거나

버릴 용기가 없었다.

남은 물병을 보며 밤새 이불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며칠 후, 침묵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내게 아빠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물... 엄마가 다 마셨더라. 아들내미가 사준 물이라면서…."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의 마지막 남은 희망조차 지켜주지 못했던

무능한 아들의 마음 위에,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침묵 속에서 기꺼이 독배를 들이킨 어머니의 사랑이, 비수처럼 박혀들었다.

차라리 내가 그 물을 버렸더라면... 아니, 차라리 내가 그 약속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이 나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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