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3화

악취와 경계

by 송필경

나비수의 거짓 약속이 무너져 내린 뒤,

시간은 배신자처럼 빠르게 흘렀다.

그 짧은 행복의 뒤편에서, 엄마의 암은 종아리에서 발톱을 세우기 시작했다. 붓기가 터져나올 듯한 딱딱한

돌멩이 같던 종양은, 이제 더 이상 작은 점이 아니었다. 날마다 검은 잉크가 번지듯, 피부 속을 침범하며 흉측한 형체로 뭉쳐 올라왔다. 붉고 검은 죽은 피의 색깔, 거칠게 터질 듯한 핏줄들, 한눈에 보아도 생명이 아닌, 죽음이 뿌리내린 자리였다. 며칠이 지나자 둥근 산처럼 솟아오른 살점 위로, 피부는 생명을 다한 낙엽처럼

검붉게 변해갔다. 그리고 곧, 시들어가는 생명만이 가질 수 있는 독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역겨웠다.

그 냄새는 나에게 묻어, 옷깃에도, 손톱에도 스며들어 나를 죄인처럼 만들었다.

엄마는 다인실에 계셨다.

여섯 개의 침대가 오와 열을 맞춰 놓인 병실은,

낮에도 고요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오후의 햇살은

늘 잔인하리만큼 평화로웠다.

병실은 밤이 되면 더욱 깊은 침묵 속으로 잠겼다. 링거줄 흐르는 소리, 간헐적인 기침 소리,

그리고 고통을 겨우 억누르는 신음 소리들이

그 고요를 채웠다.

밤마다 나는 엄마의 종아리에서 퍼져 나오는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

내 코에선 이제 무뎌진 듯 희미해진 그 냄새가,

옆자리 환자들에게는 살을 에는 비수가 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치는 불평들이었다.

헛기침이 늘었고,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는

몸짓이 잦아졌다.

쨍한 섬광처럼 한두 번씩 꽂히던 날선 눈빛들은,

곧 짜증 섞인 한숨이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애써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보지 못한 척 했다. 밤마다 차가운 병실 복도에서 환기를 시키며 어떻게든 냄새를 가려보려 했지만, 이미 피부 속 깊이 자리 잡은 악취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냄새는 불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댐이 무너지듯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환자들 병까지 옮는 거

아니야? 여기는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 거예요!”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선 비난은,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파편처럼 내 몸을 꿰뚫었다.

순간, 내 안의 모든 인내가 폭발했다.

지난 세월 쌓아온 엄마를 향한 미안함,

무능한 자신에 대한 분노, 엄마의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당신들이 뭔데!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내 엄마는... 아픈사람이지 전염병이 아니라고!”

나는 그곳에 있던 병원 사람들에게, 내 안에 쌓인 절망의 모든 것을 퍼부었다.

악다구니를 쓰고 소리치고, 발버둥 쳤다.

내 고통이 너무 버거웠던 나는, 마치 끈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난동을 피우는 미친 놈이 되어버렸다.


병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그리고 그 뒤편의 엄마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은 나를 넘어,

야윈 침상에 말없이 누워 있는 엄마를 비수처럼 꽂아 넣는 것만 같았다. 치욕이었다. 나의 모든 절규가 결국 엄마에게 더 큰 치욕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결국 나는 엄마의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의 옷자락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쓸어주고, 야윈 어깨를 토닥였다.

병실 복도, 차갑고 길게 뻗은 병원의 회색빛 공간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하염없이 울었다.

흐느낌조차 희미해진 채,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이 모든 상처를 내가 고스란히 끌어안았어야 했는데. 내가 방패가 되어야 했는데. 나는 결국 엄마에게 또 하나의 치욕을 안겨준 무능한 자식일 뿐이었다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밤새도록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울부짖던 그날 밤,

복도의 차가운 공기는 우리의 뜨거운 눈물과 섞여 흔적처럼 남았다.

그제야 병원은 다른 병실을 수소문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짐을 꾸렸다.

몇 걸음 옮기지 못하는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복도를 지나는 순간, 남은 병실 환자들의 시선이 등 뒤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 속에는 안쓰러움보다는 불쾌함이 더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옮기는 병실이었겠지만, 우리에겐 끊어진 다리 같았다.

새로운 시작이 아닌,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으로.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경계가 우리 주변에 쳐진 것을 느꼈다.

악취가 남긴 보이지 않는 벽, 비난이 남긴 깊은 상처. 그리고 나는, 그 벽이 이미 우리 가족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제 우리는, 그 경계를 넘어 또다시 미지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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