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4화

밤의 고백

by 송필경

병실의 새로운 경계 속에서, 우리는 더욱 깊은 고립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링거 폴대 바퀴 구르는 소리만이 간간이 복도에 울리는 고요한 밤, 침대 끄트머리에서 쪽잠에 빠져있던 나를 엄마가 가만히 깨웠다.


“아들아, 밖에 좀 나가자.”


피곤에 절어 감겼던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터질 듯한 머릿속엔 그저 단잠을 방해받았다는 짜증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래도 나는 이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엄마의 휠체어를 끌었다.

휠체어의 작은 바퀴 소리가 밤의 침묵을 찢었고,

텅 빈 복도는 길게 늘어진 형광등 불빛 아래 더욱 차갑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저편에서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환자들의 옅은 신음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병원의 가장 한적한 구석, 작은 창문이 길게 나 있는 공간에 엄마를 밀어드렸다.

창밖으로는 병원 주차장의 희미한 불빛이 축 처진 어둠 속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었고, 그 너머로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작은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차가운 별빛들이 병원 유리창에 반사되어 엄마의 야윈 얼굴을 희미하게 비췄다.

엄마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다, 곧 지쳐 늘어진 내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그 손은 이제 너무나 가벼웠다.

종잇장처럼 얇아진 피부 아래로 앙상한 뼈가 만져졌고,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이었지만, 그 온기만은 여전히 뜨겁게 내 손을 감싸 안았다.

“아들.”

엄마의 목소리는 밤공기처럼 희미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 단 한마디는 나의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말이야... 너를 낳은 거야.”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연일 계속되는 간병과 일의 강행군으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짜증과 피로가 뒤엉킨 내 감정의 늪.

그런데 엄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이 상황에서 왜 그런 말을…' 하는 원망 섞인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나의 못난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들을 나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치 내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모든 것을

읽어낸 듯, 더 이상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마치 일기예보를 하듯 말을 이었다.

“엄마가 죽고 나면… 아빠랑은 이렇게 지내야지.”


그녀는 앞으로 남겨질 두 남자의 삶을,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혹은 간절한 마지막 바람처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모와 삼촌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 당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마치 내일 당장

장을 보러 갈 계획을 세우듯 담담한 그 목소리에,

오히려 내 안에서는 미쳐버릴 것 같은 절규가 끓어올랐다.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제발!” 나는 이제 거의 울부짖다시피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가 차가운 복도 벽을 타고 길게 메아리쳤고, 저 멀리서 간호사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의 떨리는 손을 더욱 꼭 쥐었다.

그리고 이모와 삼촌들 이야기를 끝낸 엄마는 그제야 다시 내 눈을 바라봤다.

피로와 약물에 취한 듯 흐릿한 눈빛이었지만,

그 입가에 번진 미소만은 내가 어릴 적 투정 부릴 때면 언제나 나를 감싸 안아주던 그 따뜻한 미소 그대로였다.

“이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정신이 자꾸 오락가락해. 정신을 놓을 것 같다가도…

아들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드네.”

그 한마디는 마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내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 아픈 한마디가 내 안의 모든 방어벽을 산산조각 냈다.

그동안 애써 감추고 참아왔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밀려드는 죄책감, 무한한 슬픔,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그 무한한 사랑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야윈 무릎에 머리를 묻고 목 놓아 흐느꼈다.

그날 밤, 나는 엄마가 암 수술을 받던 날보다, 나비수 사기 소식을 접한 날보다, 훨씬 더 많이 울었다.

내 뜨거운 눈물이 엄마의 병원 입원복을 흠뻑 적셨고, 엄마는 말없이 내가 어릴 적 울던 그때처럼, 그저 내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어내려 주었다.

밤은 깊어 새벽으로 치달았고, 우리는 그렇게 차가운 병원 복도에서 서로를 붙들고 한참을 보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발치까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시선이 멈춘 듯했다.

오직 엄마와 나, 우리 둘만의 시간이 정지된 채 흘렀다.


그날 밤의 공기, 그 별빛, 엄마의 손길과 나의 눈물, 그리고 그 고백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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