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피어난 두번째 사기
그날 밤 엄마가 건넨 담담한 고백은, 내 삶의 모든 나침반을 재설정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너를 낳은 거야.”
그 말 한마디가 심장을 뚫고 박혀, 나는 기필코 엄마를
살려내리라 결심했다.
그날의 오열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엄마의 마지막 삶을 지탱할 힘을 달라는, 절규에 가까운 맹세였다.
'아빠랑 이렇게 지내야지'라던 엄마의 마지막 바람 또한, 현실의 그림자에 짓눌린 나에게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굳건한 약속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마를 살려내고야
말겠다고,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겠다고, 부서진 마음을 붙들고 또다시 다짐했다.
이 필사적인 결심은 나를 더욱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사기의 그림자는 이미 나의 지쳐버린 정신을, 나의 절박한 심장을 끈질기게 쫓고 있었다.
나는 밤마다 인터넷을 헤매기 시작했다.
의학 논문부터 시작해서, 난치병을 극복했다는 사람들의 간증글까지, 온갖 정보의 바다를 갈구하는 눈으로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문득, 해외 의학 사이트에서 '아로마 치료가
암 통증 완화와 세포 재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한 줄의 문구를 발견했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 글자가 곧 구원처럼 보였다. '이거다!' 나의 모든 이성은 마비된 채, 그 글자에만 현혹되었다. 엄마의 병실 한쪽에서 풍기던 악취, 나비수에 대한 후회, 간병으로 지친 모든 현실을
뒤로한 채, 나는 아로마의 향긋한 거짓 약속 속으로 무섭게 빠져들어 갔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 '아로마 치료에 특효'라는
알 수 없는 약제들과 기구들을 찾아냈다.
전문가의 상담을 가장한 판매자의 감언이설은
나의 무너진 판단력을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맹목적인 믿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카드를 꺼냈다.
당시 나의 모든 재산이나 다름없었던, 간신히 연명하던
마이너스 통장 잔고마저도 비웠다.
무려 육백만 원이었다.
그때 내게 육백만 원은 평생 갚지 못할 빚처럼
느껴지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이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모든 희망을 실은 채 결제를 마쳤다.
나는 기어이 엄마를 살려낼 거라고,
애써 흔들리는 손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며칠 후, 주문했던 '기적의 치료제'가 집으로 도착했다. 잔뜩 기대를 품고 상자를 열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이소에서나 볼 법한 값싼 향초 몇 개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허브 오일 몇 병이 전부였다.
믿을 수 없었다.
육백만 원. 나의 피 같은 돈, 엄마를 살리겠다고 발버둥 쳤던 그 처절한 희망의 대가가 고작 쓰레기 같은 향초 몇 개였다니. 손과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나의 눈은 미친 듯이 박스를 헤집었지만,
그 어떤 신비로운 약제도, 기구도 없었다.
거대한 배신감이 온몸을 휘감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워졌다.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해외 판매상이라 추적 불가", "증거 불충분" 같은 무심한 답변뿐이었다.
잡을 수 없었다.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지난 나비수 사건과 똑같은 수법에 또다시,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당했다는 사실이 나를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갔다.
죽고 싶었다.
그 고통의 칼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엄마에게 또 한 번의 희망 고문을 했다는 자책감과 동시에,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치욕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이 치욕을, 이 실패를,
어떻게 엄마에게 또다시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나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으로 엄마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가.
결국 나는 이 모든 일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쓰디쓴 진실을 엄마에게 알릴 수 없었다.
나에게 절망의 상흔을 남긴 채 홀로 삼켜야 할 비극적인 짐이었다.
밤새 혼자 울고, 억누르고, 지우려 애썼다.
나의 무능함, 어리석음, 그리고 두 번이나 실패한 희망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묻혔다.
이 아픔을 홀로 삭이며, 나는 또 한 번 엄마의곁을 지키는 비겁하고 무능한 아들이 되었다.
이 비밀은 나와 엄마 사이에 놓인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