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6화

엄마의 엄마를 찾다

by 송필경

두 번째 사기의 비참한 결말 이후, 나의 상실감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겼다는 자책감과 동시에, 그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나 자신의

고립감이었다. 나는 점점 더 엄마 앞에서 침묵했고, 나의 그 침묵은 우리 사이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었다. 나는 그저 엄마의 곁을 맴돌며 약해져가는 숨소리를 세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병실은 링거의 규칙적인 똑똑거림만이 삶의 시간을 알리는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통증은 더욱 거세졌다.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편히 숨 쉬지 못했다.

병원 침대에 기댄 엄마는 이제 밤낮으로 힘겨워하셨다. 평생을 한 번도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엄마였다. 한 번도 내 앞에서 무너진 적 없었고, 늘 나를 굳건히 지탱하던 버팀목이었다. 나의 영원한 방패였고,

가장 강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엄마의 가장 여린 속살을 마주해야 했다.

"엄마... 엄마..."

희미한 신음 소리 같은 울림. 나는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잠결에 뒤척이던 나는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굳어버렸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나의 외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외할머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외할머니를 엄마는 나지막이 불렀다.

"엄마... 너무 아프다, 엄마..."

나의 귓가에는 차가운 유리창 밖을 맴도는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꿈속에서 어린아이가 된 듯 엄마는

야윈 팔을 휘저었다. 약에 취해 흐릿한 동공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평생의 한을 풀어내듯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 그것은 내가 아는 단단하고 강인했던 엄마의 울음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엄마는 고통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혼란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쳤다. '지금 이 엄마가 내가 알던 그 엄마가 맞나? 저렇게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였단 말인가?'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님... 한 번만 더 놔주세요... 제발... 너무 아파요... 한 번만..."

그 말 속에는 살아 있는 자의 가장 처절하고 본능적인 호소가 담겨 있었다. 통증이라는 거대한 지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엄마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간절한 애원은 병실의 고요를 깨고 나의 심장을 갈라놓았다. '외면'. 나는 고통스럽게도 엄마의 모습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애절한 눈빛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엄마는 아버지 도박판에

여자몸 홀로 들어가 전세등기권 까지 가져왔던 강한 사람이었고,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 같았다.


혹은... 너무나 압도적인 고통 앞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지만, 나는 그저 침대에 앉아 창밖의 어둠만을 응시했다.

엄마의 모습이 비치는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가웠다. 나의 가장 강인한 방패였던

엄마가, 가장 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무너지는 순간. 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비겁하게 눈을 감는 나약한

아들이 되었다. 그날 밤의 고통스러운 장면들은 마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내 영혼에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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