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만찬의 꿈
그날 밤 이후, 나의 삶은 엄마의 눈물 한 방울이 남긴 죄책감 속에 잠식되었다.
술기운에 토해낸 비명 같은 말들은 나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찍혔다.
나는 매일 엄마에게 말없는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나의 비참한 고백을 들어줄 상태가
아니었다. 마약성 진통제는 엄마를 깊은 수면 아래 가두어 놓았고, 이따금씩 가느다랗게 감빡이는 눈빛만이 그녀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육체는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졌고,
나의 뼈를 깎는 간호는 그저 꺼져가는 불꽃에 바람을 보내는 듯한 절망적인 행위였다.
엄마의 영혼이 이미 저 먼 곳을 향하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나는 차마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희미해져 가는 엄마의 숨소리를 세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군청 사무실에서 멍하니 서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상은 무의미한 반복이었다. 그때, 책상 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빠였다.
“아들아, 빨리 와야겠다.”
아빠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동시에 묘한 흥분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엄마가... 엄마가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족발이 드시고 싶다고 하신다.”
나는 믿지 않았다. 몇 달째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족발이라니. 귀가 멀었거나, 아빠가 간절함에 착각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족발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 깊은 곳의 한 줄기 빛을 흔들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 나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군청 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족발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힘과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나를 가졌을 때, 엄마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셨지만 제때
먹지 못했던 살구.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살구를 찾아 몇 군데 과일 가게를 더 들러야 했다.
희미해진 기억 속의 살구를 손에 든 순간, 나는 또 한 번 기적을 빌었다.
병실 문을 열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엄마의 병든 육체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섞인 공기가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든 것이 흐려졌다. 침대 위, 엄마는 정말 해맑게 웃고 계셨다.
기력이 없어 말도 제대로 못 했던 분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약물로 뒤범벅되었던 얼굴빛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그 미소는 내가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김치전을 해놨다며 얼른 먹으라고 부르시고는, 당신은 드시지 않고 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그 익숙하고 따스한 미소 그대로였다. 나는 헛것을 보고 있나 싶었다.
“엄마, 족발하고 살구 사왔어.”
살구. 그 잊힌 단어를 듣는 순간, 엄마의 눈은 커졌다. 그리고 느릿하게 팔을 들어 나를 끌어안으셨다.
파리처럼 가벼운 몸이었지만, 그 품속은 여전히 따뜻했다.
“역시 아들밖에 없구나.”
힘없이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는 분명했다. 나의 이름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발음하셨다.
엄마는 내게 남은 삶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나를 꽉 안아주셨다.
그 순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품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날 밤은 꿈만 같았다. 엄마는 족발 몇 점을 힘겹게 넘기셨고, 살구 한 조각을 입에 물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세상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 듯한 평온함 속에 빠져들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 기적 같은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그 밤이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픈 현실의 고통과 죄책감은
그 밤만큼은 깨끗하게 씻겨 나간 듯했다. 이제는 안다. 그 꿈결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 마지막 만찬이었음을. 그리고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엄마가 남긴 마지막 기적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