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강변살자 19화

숨결이 멈춘 시간

by 송필경

그 꿈결 같던 밤 이후, 시간은 유난히 더 잔인하게 흘러갔다.

엄마의 희미한 숨소리를 듣는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날이었다.

육신은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졌지만, 나의 죄책감은 촛불 그림자처럼 더 길게 늘어졌다.

말없이 엄마의 곁을 지키며 흐려져가는 숨소리를 세는 나를 보며, 아빠와 이모, 삼촌들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 우리 가족은 그저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그림자처럼 병실에 머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잊을 수 없는 날이 왔다. 나의 휴대전화는 그날따라 고장이 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전 날 밤새 이어진 숙직근무 탓에, 나는 연락망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가족들은 애타게 나를 찾았지만 내게 닿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이 끝난다는 비보 앞에서 나는 그렇게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 세상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지만, 나를 향한 시간의 문은 굳게 닫혀버린 듯했다.

간절했던 아빠와의 연락이 기적처럼 닿은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가… 위독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나의 영혼은 이미 병원의 중환자실 문을 넘어선 듯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냉혹한 진실과 마주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병원의 차가운 공기는 비극의 예고처럼 나를 감쌌다.

중환자실 입구, 유리창 너머로 이모와 삼촌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붉은빛이 선연했다.

철문이 열리고, 무거운 침묵과 함께 마주한 엄마는 차갑고 낯선 기계 장치들에 의지한 채 누워 있었다.

호흡기에 기대어 가쁘게 숨을 쉬는 모습. 삐- 삐- 하고 울리는 기계음만이 그녀의 미약한 생명을 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믿었다. 우리 엄마는 곧 일반 병실로 돌아오실 거라고. 그동안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이 위기마저 극복해낼 거라고. 나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헛된 믿음을 붙들고 있었다.

이모와 삼촌들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차가운 기계들을 지나, 나 또한 엄마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힘없이 떨리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마치 나의 온기를 모두 전해주려는 듯, 온몸의 힘을 실어 잡았다. 곤히 잠든 듯 감겨 있는 엄마의 귀에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나 엄마아들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해..”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짧은 세 글자는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절절하게 내뱉었던

고백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병실 밖 복도에서 가족들은 그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침묵할 뿐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마저 나의 심장을 죄는 듯한 그 끔찍한 시간이었다. 차가운 복도 벽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간호사들이 황급히 우리를 찾았다.

이미 나의 영혼은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향해 우리 모두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들어선 중환자실은 이전의 차가운 침묵이 아닌, 숨이 멎는 듯한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삐- 삐- 울리던 기계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의사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빠의 절규와 이모들의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지만, 나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내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그 순간 멈춰버린 듯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손이었다. 며칠 전 그토록 나를 향해 웃어주었던 그 입가에는 이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듯, 평화로운 미소가 드리워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의 이별을 했다. 나의 삶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존재했던 가장 따뜻한 숨결, 그 세상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 어떤 색깔과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나는 그저 멍하니 엄마의 차가운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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