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떤 밤이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시공의 틈에서,
내 안에는 잦아들지 않는 검은 파동이 시작되었다.
그 메아리는 쉬지 않고 존재의 심연을 흔들었고,
나는 자꾸만, 그 어둠 속으로 끌려 내려갔다.
이 책은, 그 심해의 바닥에서 주워 올린 파편들의 기록이다.
흩어진 자아의 흔적, 정지된 시간의 조각들,
내가 누구인지조차 묻던 실존의 질문과,
내 존재를 부식시키던 균사의 잔인한 속삭임까지.
모든 것이 무의미로 삭아내려 가던 텅 빈 방의 온도 속에서,
오직 한 줄기 희미한 달빛에 기대어 아로 새긴 실이었다.
때로는 판 밖으로 내던져진 흑돌의 운명처럼 무너지고,
때로는 닫힌 경계 앞에서 망설였다.
그러나 그 모든 상흔과 흔들림 속에서
나는 기어이 나만의 율려(律呂)를 쓰려 했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암호들을 해독하며
오직 나만의 길을 찾아 걸었다.
접힌 날개로 땅을 짚었고, 꺾이지 않는 푸름으로 저항했다.
심연으로의 고의적인 침잠 끝에 나의 무게를 재었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심장을 읽는 시야를 얻었다.
이 여정은 때로 고독했고, 때로 격렬했으며,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끝내 달까지 닿을 듯했다.
이제 나의 마음의 샘은 맑고 고요하여,
지나온 모든 침묵과 번뇌를 걸러낸 후
흐르는 강처럼 다시금 스스로 시를 쓴다.
이 페이지들이 당신의 심연에도 닿아
숨죽인 메아리를 깨우고,
당신만의 율려를 찾는 여정의 작은 등불이 되기를.
그리하여 홀로이 선 각자의 광야에서
이 세계를 흔들 당신의 독주가 시작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