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정지된 필름의 시간)

3화

by 송필경

정지된 필름의 시간


달빛은 칼날처럼 흩어져

 밤의 골목을 찢듯 가른다.


나는 그 서슬 위에서,

 텅 빈 시간을 곡예하는 외로운 줄꾼.


발밑의 닳아버린 시계태엽은

 부서진 톱니를 겨우 엮으며

 집요한 느림 속으로 회귀한다.


똑— 딱.

 사막의 유리 파편처럼

 과거는 내 발목을 베어내고,

 핏물 대신 흐느끼는 침묵만 남긴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무엇을 휘저었을까.

 잊힌 이름의 먼지인가,

 아니면 수만 년 전 바다에서 밀려온

 내 어깨를 적시는 짠물인가.


미래는 접히지 않는 지도,

 손끝 너머에는

 영하의 푸른 안개만 서성인다.


오늘도 나는

 투명한 골격만 남은 기억의 박물관,

 그 안에 갇힌 숨결로 살아간다.


빛바랜 초상 속

 영원히 정지된 너의 미소가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내 모든 숨을 재단하고,

 나는 기어이 다시 숨을 고른다.


그늘이 삼킨 네 눈빛.

 나는 홀로 남아

 정지한 그림자를 끝내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