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탄생(혹은 낙하)의 의식)

2화

by 송필경

탄생(혹은 낙하)의 의식


세상에 첫 발을 각인한 날,

혹은 천길 나락으로 추락하던 그 찰나—

응시하는 젖은 시선, 안개 너머 희미하게 풀리고

가슴 저 밑바닥, 태초의 칼날이

겨눠진 기억들을 찢어발긴다.


어둠이 게워낸 시간의 틈.

조각난 햇살을 갈퀴질해 모아도

사멸치 않는 메마른 그림자,

끝내 살을 파고들어

묵정밭 검은 흙이 된다.


광장의 불꽃은 요동치며 타오르나

나는 사멸한 연료의 껍데기.

단 한 줌 숨조차 삼키지 못한 채

내 그림자 위에 드리워진 또 다른 그림자로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


어느 날—

가만히 물끄러미.


거울은 잔혹한 낯선 얼굴을 내보이고

겹겹의 가면이 찢겨 벗겨지자

날것의 표정 하나 남는다.

그것마저 강물 위에 일렁이는 순간에 빛처럼

아득하게 깜박이며,

기어이 산산이 흩어진다.


더는—

물끄러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