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꺾이지 않는 푸름)

13화

by 송필경

꺾이지 않는 푸름

새벽을 깨우는 매서운 한기,
설렁임에 몸을 섞는 여윈 조릿대.
차가운 숨결을 토해내도
설백의 눈은 끝내 그 푸름을 굽히지 못한다.
핏빛의 고집, 빛보다 질기게 번져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이미 일어난다.

저기, 생명의 약속을 잃은 대지 위에
잎새는 순순히 스러지고
하얀 침묵 속 강물은 숨을 멎는다.
모든 절규를 찢는 바람이 지나가면
세상은 잠시, 고개 숙인 경건함으로 식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꺾임은 소멸이 아니라 서막,
스러짐은 또 다른 피어남의 의식임을.
부서진 틈마다 여윈 숨이 스며
죽음이 발 딛은 자리에 다시 생이 움튼다.

나는 마침내 허물의 무게를 벗는다.
차가운 톱니바퀴의 세상 아래
불가능이라 속삭이던 목소리들 사이에서,
자유의 정신으로, 푸름의 원형으로 선다.

이 밤, 별빛조차 닿지 못한 자리에
홀로 발광하는 작은 불씨,
깨트려 완성된 나의 기원.
나는 안다 —
이 푸름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흐르는 영혼의 증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