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

에필로그

by 송필경

에필로그: 흐르는 샘, 피어나는 시간

어둠의 끝, 가장 깊은 심연의 바닥.
그곳에서 나는 무수한 파동에 흔들리고, 존재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기어이 나라는 한 점의 형상이 파편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질문들, 갇힌 시간의 정지된 필름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비명이던 나날.
무의미의 균사가 피어오르고, 얼어붙은 바다 아래 홀로 버려진 채
'나'라는 명패마저 불식되던 기억이여.

그러나 지독히 투명한 달빛은 기어이 내 안의 아로 새긴 실을 찾아
간절한 기다림 끝, 새벽녘의 경계를 희미하게 물들였다.
발목 묶던 쇠사슬은 이제 땅을 짚는 지팡이 되고,
접힌 날개로는 낮은 땅을 기어 나만의 길을 이었다.
광야의 고독 속, 아무도 듣지 않을 독백으로 나만의 율려를 발화하고
미지의 암호와 씨름하는 밤을 견뎌 마침내 푸른 숨을 쉬는 조릿대가 되었다.
꺾이지 않는 의지로, 설백의 세상에 저항하며

깨달은 진실.

판 밖으로 내던져진 흑돌의 운명은 역설적으로 더 넓은 시야를 허락했다.
흐릿해진 경계는 모든 과거를 품고 흘러 태양 속으로 사라졌고,
나의 그림자마저 고의로 뛰어든 심연에서 진정한 무게를 찾았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심장을 읽게 되었으니,
흐르는 강 자체가 되어 삶의 모든 순간을 시로 쓰고 있더라.
나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흔드는 독주의 피날레.
달까지 이어진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끝내 나를 초월의 빛으로 이끌었다.

이제 모든 번뇌와 침묵이 거세된 자리.
내 안의 샘은 투명하게 맑아,
그 검은 물감과 앙금조차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
사랑의 단어, 기억의 향기, 추억의 맛—
한 스푼, 한 스푼, 고요히 마음을 깨우며 가라앉는다.
그리고 맑아진 샘은
새로운 바람결에 몸을 싣고
자신을 품은 생명을 싣고
멀리, 멀리
영원의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이 모든 파장이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 되리니.
그리하여 나는,
흐르는 샘, 피어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