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는 환불이나 교환을 잘 하지 않는다.
사이즈가 조금 크거나 작아도, 색이 생각과 달라도
어차피 입게 될 옷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옷을 다시 찾기보다는,
지금 가진 옷에 몸을 맞추는 쪽이 더 익숙하다.
택배 상자를 열고 옷을 꺼내 입어보는 순간에도
이미 마음은 반쯤 결론을 내린 상태다.
불편하면 조금 참으면 되고,
어색하면 몇 번 입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옷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가끔은 그 ‘그 정도’가 언제부터 이렇게 넓어졌는지
혼자서 가늠해 보기도 하지만,
굳이 답을 찾지는 않는다.
그래서 옷장에는
완전히 마음에 드는 옷보다
그냥 입게 되는 옷들이 더 많다.
버리지는 않지만, 굳이 아끼지도 않는 옷들.
그런 옷을 입고 있으면
몸은 편한데, 마음은 아주 잠깐 멀어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 불편함마저 익숙해지면
하루는 무사히 지나간다.
택시도 비슷하다.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지만
나는 아직도 길가에 서서 손을 든다.
앱을 쓸 줄 몰라서도 아니고,
불편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몸에 남아 있다.
손을 들고 서 있으면
잡힐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조금 더 기다리다 다른 길로 걷게 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뜻밖에
평소엔 보지 않던 가게 불빛이나
천천히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기다린 만큼 얻은 건 없지만,
기다렸기 때문에 보게 된 장면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환불을 하지 않는 것도,
택시를 손으로 잡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다시 돌려보내는 일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쉬워진 것이다.
편해서라기보다는,
이미 여러 번 그렇게 지나와 버렸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건
더 나은 선택을 계속 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방식에 몸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고치는 대신,
그 불편함이 데려오는 시간을 함께 견디는 쪽으로.
오늘도 나는
조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길가에 서서 손을 든다.
그리고 그 정도의 어긋남쯤은
이제는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가끔,
그 어긋남 사이로 스쳐 지나간 풍경들이
조용히 마음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을 알아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