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8화

by 송필경

길을 걷다 아는 얼굴을 만났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부를 묻고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막히지 않았다.
문제는 이름이었다.

부르려는 순간마다 말이 한 박자 늦어졌다.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끝내 나오지 않는 단어 하나.
그 짧은 틈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름 대신 문장만 길어졌다.

그 친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이름 없는 대화로도
충분히 그럴듯한 시간을 보냈다.
언제 한 번
저녁이나 먹자는 말도 나왔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서로 알고 있는 약속처럼.

확인하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았다.
그 정도의 거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는데,
같은 시간을 지나온 기억도 있었는데,
이름만은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와서 한참을 더 떠올려 보았다.
전화번호를 찾을 수도 있었고,
메신저를 뒤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이름을 잊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부르지 않기로
이미 마음속에서 정해두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시간과 진심을 건네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는 걸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 셈이다.

오늘 하루에 또 하나의 이름이
말해지지 않은 채로 지나갔다.
조금의 아쉬움과
설명할 필요 없는 피로감만 남긴 채.

그리고 나는 그것을 붙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