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그렇게

10화

by 송필경

지하철 칸, 일렁이는 사람들. 모두 한 호흡에 움직이듯 같은 자세다.
시선은 낮게 박히고, 손 안의 빛이 그들의 세계를 이룬다.
명령받은 적 없지만, 이미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긴 듯 그렇게 흘러간다.

나 역시 그 물결의 일부다.
굳이 주위를 살필 이유도, 불편할 틈도 없다.
새롭게 각인된 본능처럼, 이 몰입이 가장 자연스럽다.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선 시간과의 새로운 거래,
다른 선택지 자체가 희미해진 채,

이 방식은 일상이 되었다.

약속을 기다리는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예전에는 먼저 도착하면 그저 흐르는 대로 시간을 기다렸다.
시계를 한 번 보고,
익명의 얼굴들을 한 번 훑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도 시간이 자연스레 흘렀다.
그 기다림은 특별하진 않아도,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약속이 다가올 시간을 먼저 띄워놓는다.
어디쯤인지, 얼마나 남았는지 거리를 확인한다.
재촉하려는 마음보다는,
이 시대의 익숙한 속도에서 홀로 이탈하지 않으려는 몸짓에 가깝다.

기다림이라는 본질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기다림을 채우는 내면의 풍경이 바뀌었을 뿐.
나는 낯선 세계의 작은 창을 들여다보고,
짧은 글 조각들을 모으며,
잠시 다른 시공간에 다녀온다.
누군가의 완벽히 다듬어진 하루,
몇 분 안에 압축된 이야기,
혹은 아무런 의미도 따질 필요 없는 순간의 유희들.

가끔은 문득 고개를 들어
그 어떤 정보의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은 채
예전처럼 텅 빈 시선으로 서 있어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은 다시 낮아진다.
이제는 이 흐름 속의 안온함이 더 편하다.
아니,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이
이 변화된 세상 속 가장 무리 없는 선택처럼 다가온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기다림을 잃는 일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내 몸에 꼭 맞는 자세를 빠르게 익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편안함과 체념의 경계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부드러워져,
더는 그 미묘한 차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으면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조용히 동화되어 서 있다.
조급함도, 특별한 여유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지금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