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와D사이 C다.

12화

by 송필경

음식 간판들을 펼칠 기운조차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빨려 들어간 음식점.
창문 밖 무심히 내리던 햇살이 낡은 테이블 위로 내려앉는 순간,
그곳은 이내 나만의 지친 영혼을 달래는 성역이 되어 있었다.
하루의 고단함은 뜻밖의 달콤함으로 번져, 쓰디쓴 기억마저 보상받는 듯한 기분.
삶이 때로는 이렇게, 한 입의 위로로 말을 거는 듯했다.

복잡한 미로 같은 세상 속에서,
줄을 섰는데 나만 따라 줄이 속 시원히 줄어들었던 날,
지옥 같던 출근길에 기적처럼 차 한 점 밀리지 않았던 순간,
온 힘을 다해 예매한 콘서트 티켓,
간절히 바라던 꿈 같은 자리가 거짓말처럼 내 것이 된 순간까지.

그때는 어쩌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삶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거대한 손에 이끌려 ‘걸어져 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막연한 거대함 앞에서, 나는 어쩐지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의 의지가 서서히 꺼지는 듯한 작은 불안에 휩싸이곤 했다.
겹겹의 변명을 걸치고,
세상 앞에서 체념했던 나약한 마음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누구의 등 뒤에 줄을 설지 선택했던 것도,
그 발걸음으로 출근길을 나섰던 것도,
새벽을 지새우며 티켓을 예매했던 것도,
결국 모두 ‘내가’ 한 일이었다.

쓰라린 후회를 남긴 잘못된 선택들마저, 결국 나를 만든 조각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제는 내가 던진 모든 주사위의 결과를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더는 누구에게 하소연하지도,
부조리한 세상 탓을 하지도 않은 채,
삶이라는 파도를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법을 배운 것처럼.

그렇게 작은 기쁨과 스쳐가는 우연들이
점들을 이어 스스로 필연이 되어
나를 오늘의 길 위로 조금 더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선연히 타오르는 생명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