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증명의 여백

by 송필경


- K의 기록 중에서 -

나는 정답을 원했던 적이 없다.

다만, 왜 이것이 정답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는 이미 틀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밤마다 연필심이 닳아 사라질 때까지, K는 종이 위를 기어 다녔다.

정답은 하나뿐이었다. 흔들림은 곧 오답이었다.

여백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K는 지워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웠다.

컵밥은 지겨웠다.

전자레인지에서 돌아가는 3분 동안,

그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일까.


하지만 눈앞의 책과 프린트물은

컵밥보다 더 지겨웠다.

그 시절 K의 삶은 각도의 문제였다.

기울면 무너지고, 넘치면 틀렸다.

감정은 소수점 아래의 먼지였다.

채점 대상이 아니었고,

지워도 되는 부호였다.


몇 년이 흐른 뒤,

K는 문득 이상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시험이라는 건 정말 공정하게 짜인 각본일까?

모두에게 같은 문제가 주어지고,

같은 시간 안에 풀게 하니

공평하다고들 말하지만—

혹시 누군가는 이미 답을 알고 시작하는 건 아닐까.


도서관 창가에서

K는 혼잣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는 기회문이 열리지 않지?”


돈 많은 집 아이들은

공무원 시험 같은 걸 보지 않는다.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그런데 나는 왜 수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컵밥을 먹으며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걸까.

이제 공무원 기본서는 펼치지 않은 지 오래였다.

모의고사는 거의 만점.

K의 적은 더 이상 문제지가 아니었다.


그는 7년째,

시험문제 출제자와 싸우고 있었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든 자의 의도를 파헤쳤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 숨어 있는 사고방식.

시험지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그들의 숨결을 읽어내듯 해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K는 섬뜩할 만큼 일관된 패턴을 발견했다.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쓴 문제들.

정답이 여러 개로 갈릴 수 있음에도,

그들이 끝내 선택하는 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가장 대중적인 답.

가장 많은 사람이

‘그럴 것 같다’고 믿는 방향.

이 시험은

지식을 가려내는 시험이 아니었다.


표준화된 사회에

얼마나 잘 편입될 수 있는지를 묻는

은밀한 선별 장치였다.


그 순간,

K는 처음으로 시험지 바깥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에서 요구하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순응이라는 것을.


시험은 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는 사람을 고르는 장치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이 시스템이 묻는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날 이후,

K는 더 이상 정답을 믿지 않게 되었다.


다음 화 예고

2부|컵밥과 각도

삶은 왜 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