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가
나는 처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질문하면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진다는 걸
아주 일찍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으니까.
K의 기억 속 집은 겉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어머니는 꽃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향이 있었고,
물건들은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다만 집에는 늘 사람이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회의, 출장, 회식.
그는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가족은 점점 그의 부재에 익숙해져 갔다.
어머니는 집에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화면 속에 접속해 있었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동안 어머니는 다른 이름이었고,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웃고 있었다.
헤드셋 너머로 흘러나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게임 속에서만 쓰는 애칭,
밤을 넘기는 채팅 기록들.
K는 그것이
‘놀이’가 아니라
‘도피’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K가 말을 걸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잠깐만.”
그러나 그 잠깐은 언제나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K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어른들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아이의 몸으로 배웠다.
그날 이후의 일은 K의 기억에서
정확히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집이 한 번 크게 흔들렸고,
그 이후로 아무도 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K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아니, 설명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 설명이란
결국 남는 게 아니었다.
남은 건 침묵뿐이었다.
그를 키운 것은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세계에는 큰 소리가 없었다.
대신 질서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길로 다녔다.
할머니는 늘 말했다.
“조용히 살면 탈 날이 없다.”
“튀면 다친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해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없다.”
그 말들은 훈계라기보다 경험에서 나온 경고였다.
할머니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부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K에게 가장 안전한 삶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공무원.
말이 많지 않아도 되는 직업.
위험한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정해진 답만 고르면 큰일 나지 않는 삶.
대학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대학은 질문을 배우는 곳이었고,
K의 삶에는 질문이 너무 위험했다.
K는 시험지를 택했다.
시험은 좋았다.
문제는 명확했고,
정답은 하나뿐이었다.
왜 그런지 묻지 않아도 됐다.
그 세계에서 K는 처음으로
안정이라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상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열심히 해도
앞으로 가지지 않는 느낌.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기분.
같은 컵밥,
같은 도서관,
같은 문제.
반면 누군가는
처음부터 더 앞선 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K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남들의 출발선은 같지 않았다.
운동장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고,
선은 모두에게 다른 각도로 그어져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K는 처음으로
시험지를 의심했다.
아주 작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 질문은
분노가 아니었다.
아직 항의도 아니었다.
다만
질서를 믿으며 자란 아이가
질서의 균열을 감지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감각은 훗날 K가
가진 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든
유일한 힘이 되었다.
그 힘의 근원은 분노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집에서
조용히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
할머니의 침묵이었다.
3부|시험은 질문을 싫어한다
시험은
누구를 뽑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정답을 잘 고르는 사람인가,
질문하지 않는 사람인가.
K는 마침내 시험지를 넘어서
출제자의 얼굴을 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