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질문을 싫어한다

by 송필경

― K의 기록 중에서

나는 늘 정답을 고르는 쪽에 있었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틀렸을 때 돌아오는 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은 친절했다.
묻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유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답을 고르라고만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시험이 공정하다고 믿었다.

적어도 시험지는 사람처럼 말을 바꾸지 않았으니까.



S를 처음 만난 건 도서관도, 학원도 아닌
온라인 게시판이었다.

공무원 시험 제도에 대한
자료를 찾다 우연히 들어간 글 하나.
댓글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푸념이거나 분노였다.


그중 한 문장이
유난히 조용히 남아 있었다.

“시험은 능력을 묻지 않는다.

시험은 태도를 고른다.”


닉네임은 단순했다.

S.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동의도, 반박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는 느낌.

며칠 뒤 쪽지가 왔다.

“오래 준비하신 것 같네요.”

어디에도 그런 말을 쓴 적은 없었다.

그게 이상했다.

S는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했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불필요한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


대신 시험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내 점수도, 직렬도, 나이도. 그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출제 회의, 검토 과정, 삭제되는 문장들.

“문제는 늘 많아요.
하지만 살아남는 건 몇 개뿐이죠.”


그 말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왜 그런 걸 아느냐고.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대신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을
무심한 척 던졌다.

“정답이 틀릴 수도 있나요?”

S는 잠시 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정답은 틀리지 않아요.
다만, 질문이 삭제될 뿐이죠.”


그 순간 시험지가 아니라
다른 장면이 겹쳐 보였다.


설명 없이 끝났던 사건.
기록만 남고
사람은 지워졌던 시간.


나는 S에게
부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이미 비슷한 종류의 침묵을
여러 번 지나온 사람 같았다.


대신 그는 말했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분류를 합니다.”

“살릴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리고 대부분은 불가피라는 칸에 들어가죠.”


그 말이 이상하게 가볍게 떨어졌다.

S는 예전에 온라인 게임을 했다고 했다.

현실보다 이름이 덜 중요한 곳이었다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직업, 다른 관계로 만난다고.


나는 묻지 않았다.
누구를 만났는지.
왜 그만두었는지.


하지만
그의 말 사이사이에는
끝내 말하지 않는 이름들이 남아 있었다.

“시험도 비슷해요.”

S가 말했다.

“사람을 보지 않고 번호를 보죠.”

“번호는 편해요.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순간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조용히 살면 탈이 없다.”


K는 처음으로 그 문장을 다르게 읽었다.

조용히 산다는 건
살아남는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S는
어떤 정보가 은밀하게 흐른다는 말을 했다.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증거도 없다고 했다.


다만 “항상 같은 방향으로 유리한 바람이 분다”는 것.

그는 K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조심하세요.”

“질문은 언제나 질문한 사람 쪽으로 되돌아옵니다.”

대화를 끝내고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시험지는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었고,
정답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K는 문제를 풀 때마다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이게
누군가를 고르기 위한 문제인지,
누군가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인지.


K는 아직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처음으로
출제자의 얼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 예고

4부|기억은 채점되지 않는다

S가 숨기고 있는 것은 시험의 비밀일까,
아니면
K의 가족과 연결된 삭제된 기록일까.

정답이 아닌 것들은 왜 늘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는가.

K는 처음으로 시험 밖의 자료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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