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의 기록 중에서
기억은 언제나 불공평했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도 기억되고,
누군가는 설명을 다 해도
기록되지 않았다.
시험에는 기억을 묻는 문항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기억이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S와의 대화 이후
K는 시험지를 덮는 시간이 길어졌다.
답을 고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읽다 말고
문득 다른 장면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늘 현재형이었지만
K 머릿속에서는 이미 끝난 일들이
자꾸 현재처럼 움직였다.
K는 처음으로
과거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사건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자료처럼 정리하는 방식으로.
날짜, 장소,
확인된 사실만. 감정은 제외했다.
시험처럼.
아버지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출장이 잦았고 집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집에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화면 안에 접속해 있었다.
그건 중독이라는 말로
설명되기 전의 상태였다.
당시엔
“취미”라고 불렸다.
사건이 있던 날,
어머니는
온라인 게임 오프라인 모임에 나갔다.
K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들었다.
그날 집은 비어 있었고,
밤이 깊어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날
예정보다 일찍 집에 왔다고 했다.
정확히는 그런 기록이 남아 있었다.
CCTV,
통화 기록,
이상한 사진들.
K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
설명은 늘 나중에 하는 것이었고,
K는 늘 나중을 견디지 못했다.
그날 이후 집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건이라고 불렀고,
기사는 몇 줄로 정리되었다.
“가정사로 인한 비극.”
그 문장은 모든 질문을 덮기에 충분히 편리했다.
K는 S를 떠올렸다.
그가 말했던 “불가피”라는 칸.
살릴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나누는 분류표.
K는 처음으로
그 분류가 누구를 편하게 하는지 생각했다.
S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짧게.
“의사라 하셨죠.”
답장은 빠르지 않았다.
한참 뒤
이렇게 왔다.
“그만둔 지 오래됐습니다.”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요.”
K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썼다.
“그날에도 그 자리에 있었나요.”
메시지를 보내고 후회했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침범에 가까웠다.
한참 뒤
S가 답했다.
“네.”
“게임 모임이었고, 저는 의사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무 모임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 문장들 사이에는 설명이 없었다.
그러나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이 이미 적혀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시험이 질문을 싫어하는 이유.
질문은 연결을 만든다.
연결은 책임을 요구한다.
시험은 그 모든 것을
불필요한 변수로 처리한다.
할머니는 기억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규칙을 가르쳤다.
“정해진 대로 살면 다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사랑이면서
동시에 방어였다.
세상이
어떻게 사람을 부수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의 마지막 변명.
S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진실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누적됩니다.”
“문제는 언제 그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었느냐죠.”
K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안다.
시험이 기억을 채점하지 않는 이유는
기억이 남아버리면 질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K는 오늘도 시험지를 푼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요하지는 않다.
문제 옆 여백에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
쌓이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언젠가
시험 밖으로 넘어갈 것이다.
다음 화 예고
5부|정답은 언제나 중립적인가
누가 정답을 만들고,
누가 틀린 답을 맡는가.
시험의 언어 뒤에 숨은
선별의 논리.
K는 처음으로
“공정”이라는 단어를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