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가진 사람

by 송필경

― K의 기록 중에서

시험은
정답을 고르는 사람을 남긴다.

사회는
결과를 가진 사람의 말을 남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 ‘결과’를 눈앞에서 보게 된다.



공시학원 게시판에 공지가 붙었다.

[합격자 초청 설명회]
현직 공무원 특강.
합격 전략 공개.

강의실은 평소보다 일찍 찼다.
앞줄에는 노트를 미리 펼친 사람들이 앉았고,
뒤쪽에서는 자리 맡아달라는 가방들이 오갔다.

K는 익숙한 이름이라 생각하고

맨 끝자리에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조명이 켜지고
한여자가 소개되었다.

“○○권익 위원회 행정직, L양.”

나즈막한 박수가 나왔다.

정장 차림의 L양은
또래보다 조금 더 단정한 표정으로 단상에 섰다.
자신감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사람의 안정감 같은 것.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준비했습니다.”

첫 문장은 단정했다.

“시험은 결국 꾸준함이 답이에요.”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퍼졌다.

L양은 공부 시간표를 공개했고,
기출 회독 횟수를 설명했고,
면접 준비 팁을 말했다.

말은 매끄러웠다.
누군가 써준 원고를 읽는 사람처럼 들렸다.


그러나 중간쯤,
뒤쪽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특채 아니야?”
“계약직 전환이라던데.”
“저것도 합격수기야?”

속삭임은 금세 가라앉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L양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경로가 다양해요.”
L양이 말했다.
“공채든 특채든,
결국 들어가서 증명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 말은 설명이었지만 어딘가 방어처럼 들렸다.


강의가 끝난 뒤
사람들이 몰려가 질문을 던졌다.

“면접 때 가장 중요한 건 뭐였나요?”
“가산점은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L양은 웃으며 답했다.

“자신감이요.
결국 자신을 믿는 사람이 합격해요.”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
K는 복도에서 L양과 마주쳤다.

L양이 먼저 알아봤다.

“어? K 맞지?”

이름을 듣는 순간
K는 잠시 과거로 밀려났다.

“아직 준비해?”

그 말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K의 안쪽 어딘가를 건드렸다.

“응.”

“요즘 경쟁 심하잖아.
그래도 꾸준히 하면 돼. 기회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L양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하얀 카드 위에 찍힌 직함은
깔끔했고, 확정적이었다.

그때였다.

학원 밖에서
누군가 낮게 말했다.

“저 집 아버지 힘 세잖아.”
“국회 쪽이래.”
“전환율 그 해만 이상하게 높았어.”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L양은 듣지 못한 척 차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잠시 무너졌다.

아주 잠깐.

K만이 그것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밤,
K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S였다.

“오늘 설명회 다녀오셨군요.”


첨부 파일이 하나 있었다.

표 하나.

특정 연도 계약직 → 무기계약 전환 비율.
유독 한 해만 높았다.

그 아래,
작게 적힌 자문위원 명단 일부.

익숙한 성씨가 눈에 들어왔다.

L.

S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공정은 절차로 증명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절차를 설계했는지가 중요합니다.”


K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시험 문제는 정답이 하나였다.

그러나 삶의 합격은
경로가 여러 개였다.


그 경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K는 L양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상 위에서의 단정함,
복도에서의 미묘한 흔들림.

그녀는 승자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선택된 사람처럼도 보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그녀의 이력보다 먼저 적혀 있는 삶.

트로피처럼 빛나지만
스스로 쥔 적은 없는 자리.

K는 자신 안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분노와,
연민과,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

복수하고 싶으면서도
구해내고 싶은 마음.


그 둘 사이에서
어디에도 서지 못한 채.

정답은 시험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답은 이미
누군가의 삶 위에 먼저 적혀 있었다.

그리고 K는
처음으로
그 정답의 설계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화 예고

7부|설계자의 이름

특채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출제위원, 자문단, 위원회.

S는 더 깊은 자료를 건넨다.
K는 처음으로
L양의 아버지와 직접 마주할 가능성에 다가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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