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봉선화 물들다
누이와 마주앉아
따사로운 볕, 봉선화 꽃잎 찧네.
연둣빛 잎새 위로 분홍 혼 피워
작은 손끝 저릿하도록 번지는 스밈.
하얀 백반 한 줌, 비밀스레 감싸두면
뜨거운 여름, 붉디붉게 손톱은 물들고
어린 마음에 싹튼, 낯설고도 아름다운 물결.
하얀 찬 바람, 어느새 계절 바뀌어
첫눈 사뿐히 내리던 날, 주황빛 얼룩진 손톱을 본다.
시간의 흔적으로 남은 손끝에 맺힌 누이의 맑은 웃음,
가슴속 여린 떨림, 파문처럼 번지는 마음 아려오네.
내게는 닿지 않는
누이만의 은밀한 세계 속
아련한 첫 설렘의 희미한 자국.
투명한 붉은 꽃잎 속에 숨겨둔 푸른 씨앗처럼
그렇게 누이의 첫 마음도
보이지 않게 여리고도 단단하게
세월을 머금고 자라났을까.
눈발 가득한 저녁 하늘에
태연히 빛나는 별처럼,
이토록 평안한 한 시절 피어난다.
어린 날의 꿈도
누이의 아련한 사랑도
물기 어린 손톱
영원히 새겨질 봉선화.
(박훈산 백일장 차하 작품)
어릴 적 여름이면 봉선화를 찧어 손톱을 물들이곤 했다.
작은 절구에 꽃잎을 넣고 빻으면 금세 붉은 물이 배어 나왔다.
누이는 그 물을 손톱 위에 올리고 백반을 얹어 천으로 단단히 감싸 두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비밀을 숨기는 의식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색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괜히
들여다보곤 했다.
어른들은 봉선화 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지만,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나는 문득 누이의 손을 떠올렸다.
여름의 햇빛 아래서 웃으며 봉선화를 찧던 모습과,
붉게 물든 손톱을 가만히 바라보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의 마음도 봉선화처럼 서서히 물들어 간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마음은 그렇게 물든 채로 오래 남는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