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리고 그후
강아지풀
기울기 시작한 오후,
느슨해진 그림자가 길게 눕고
마른 바람 한 줄기가 옷자락을 가볍게 스친다.
꿈보다 조금 선명한 현실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빛을 덜어내고 있다.
저기, 갈색으로 익어버린 강아지풀.
햇살을 오래 머금은 솜털 끝이
바람을 따라 낮게 흔들린다.
나는 그 흔들림을
나지막이, 그러나 분명히 느낀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황금빛이 엷어지는 들판 끝,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으면
두 손 모은 마음은
이미 멀어진 것들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람이 오래된 생각을 털어내고
갈라진 마음 사이로
늦은 숨결이 스며든다.
세상의 길들은 모두 조용하지만
저무는 빛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그 흔들림 속에 서서
더 보탤 것 없는 순간을 맞는다.
비어 있던 자리에도
빛이 다 지나간 뒤
조용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던
그날의 작은 설렘처럼.
늦은 오후 들판을 걸어가다 보면
강아지풀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가까이 보면 별것 아닌 풀인데도
햇빛을 오래 머금은 솜털은 묘하게 따뜻해 보인다.
어릴 적에는 그 풀을 꺾어 손등을 간질이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저 가벼운 장난이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감촉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강아지풀처럼
바람이 스치듯 흔들리며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설렘은
아주 작은 흔들림으로 찾아와
오랫동안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