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읽히지 않는 날이 있다.

by 송필경

눈은 멀고
발은 가까운 날

슬픔이 차올라
오히려
들어갈 수 없었던 걸까

읽힘이란
내가 읽는 것인지
아니면
읽히는 것인지

그날

바람은 차가웠고
성경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분명 읽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 문장을 따라가고
익숙한 구절들을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읽고 있는데 읽히지 않았다.

어디를 읽고 있는지, 무슨 내용인지
금세 흐려졌다.
몇 장을 넘겨도 붙잡히는 문장이 없었다.

이름들이 이어지고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그저 지나갈 뿐이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말씀이 멀어진 것인지
내가 멀어진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조금 더 읽어 보려 했다.
의미를 붙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더 읽을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책을 덮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 같은 그 공백만 남았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말을 걸 수도 없고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로
그저 머물러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무언가가 없었던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던 시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날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시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펼쳐 두었던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말씀이 닿지 않는 날에도
하나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붙잡으려 하기보다 그저 머문다.
"내 말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이사야 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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