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안개비의 여인

by 송필경

안개비가 여인의 웃음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며
새벽을 적신다.

창가에 내려앉은 빛은 파란 비늘처럼 반짝이고
젖은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작은 기척 하나가
기억의 표면을 조용히 흔든다.

휘어진 초승달에 걸린 밤의 그림자가
귓속 어둠을 적시고
부르려는 순간마다 늪처럼 가라앉아
흐릿한 흔적만 남긴다.

안개비는 비단결을 풀어
사랑의 윤곽을 다시 그려 놓고
나는 흔들리는 경계 위에서 잠시 멈춘다.

바람이 마음의 얼음을 깨뜨리듯 스쳐 지나가고
잔잔한 호수 아래로 투명한 금빛이 번진다.
숨겨 두었던 감정들이 금빛 파문 속에서
미세하게 갈라진다.

볼펜의 선처럼 마음속에 새겨진 얼굴을
한 획씩 다시 그리며
사라질 듯 흔들리는 기억들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천천히 열리는 태양의 길 위
눈을 감으면 빛보다 먼저 그녀가 떠오른다.
이마 위 내려앉던 작은 그림자


숨을 머금던 미소
오후의 긴 그림자가
한 장면처럼 겹친다.

오래된 지도를 펴듯
나는 가슴 속 나침판을 꺼낸다.
잊힌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안개비는 잠시 후 그치고
여인의 웃음소리도 마지막 잔향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러나 비워진 자리는 텅 비지 않는다.

이마 위 스며드는 한 줄기 냉기처럼
오래된 물안개가 내 안에 내려앉아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그녀를 향한 길을 더듬듯
사라진 흔적들을 천천히 따라간다.

밤과 새벽 사이
안개비에 젖은 기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마음을 떠돌고
나는 그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안개비 속에서 나는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녀의 웃음과 그림자, 그리고 숨결 하나하나가
새벽의 빛과 안개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머무름을 선택했던 나.
그러나 회상 속에서 여전히 길을 걷고 있는 나.

안개비는 마음의 경계 위를 스치며
잃었던 감정을 다시 비추고
사라진 기억마저 손끝에 닿게 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흔적은 비워진 공간 속에 내려앉아
조용히 숨을 고른다.

나는 그 속에서
천천히 길을 따라간다.

오늘도 안개비와 함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아갈 길을 더듬는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사라진 사랑과 나 자신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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