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가죽 표지
손때 묻은 페이지 사이
조용히 놓인 말씀
손끝에 닿는 온기
바람에 실린 먼지처럼
어딘가 스며드는 손길
먼 바다 위
떠 있는 작은 배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흔들리며
나를 감싼다
시간의 강 위
잠시 머물던 떨림은
조용한 물결로
조용히 마음을 흐르게 한다
결혼 초, 아내가 권한 세례와 함께
장모님께서 성경책을 건네주셨다.
처음 장모님을 뵈던 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교회를 다니는 사위라서 좋구나.”
내 손은 잠시 멈추었다.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때 마음속에는 작은 비밀이 있었다.
장모님은 조심스레 책을 내밀었다.
손끝이 내 손등에 스치는 순간,
종이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손때 묻은 표지, 빛바랜 가장자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처럼 나를 감쌌다.
처음 책을 펼치면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끝으로 페이지를 따라 내려가도
마음은 쉽게 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이 무겁게 눌러 왔을 때
손이 자연스레 그 책으로 향했다.
출근길, 침대 머리맡, 새벽의 고요 속
페이지를 펼치고 손끝으로 스치는 감촉
바람에 스며든 먼지처럼
조용히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책장 사이사이 손때 묻은 흔적은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이 쌓인 자리였다.
장모님과 아내의 기도와 기대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깃들어 있었다.
가끔은 페이지를 덮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느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와 손길이
마음을 잠시 머물게 했다.
성경책은 여전히 낯설고
한 줄 한 줄이 천천히 스며들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과 흔적,
조용한 손길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묵묵한 위안이 되어 주었다.
삶 속의 숨은 손길은 거창하지 않아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을 스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 시편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