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처럼 휘어진 넓은 신작로가 무대 위에 펼쳐져 있다. 싸늘한 바람은 이리저리 뒹굴며 낙엽을 몰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지막한 산은 길 양옆에서 객석이 되고 나무들은 선 채로 누군가를 숨죽여 기다린다.
예닐곱 살의 여자아이가 자그마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한길에 들어서며 등장을 알린다. 바쁘게 오가던 바람은 나뭇잎을 뒤로한 채 개구쟁이처럼 다른 해작질을 하고 싶은지 둘의 뒤를 바짝 따라 붙는다. 군용차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고 노인과 아이는 안개 같은 흙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할머니와 아이는 먼지를 털어내며 한 손에는 깡통을 들고 초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쫓아오는 바람을 털어내듯 둘의 걸음이 빨라진다.
내가 가끔 할머니를 생각 할 때면 연극의 정지된 장면처럼 박제 되어 있는 모습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무렵이었다. 기울어 가던 가세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마지막 남아있던 집마저 넘어가 가족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부모님과 언니, 동생은 다른 집 셋방을 얻어가고 유난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나는 자연스레 할머니와 함께 각각 살게 되었다.
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섰다. 언덕배기에 있는 신작로에는 찬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가느다란 철사 손잡이가 달린 깡통은 할머니의 손에서 마구 흔들렸다. 미군부대서 쓰고 버린 쇼트닝 통이다. 추운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미군들이 먹고 버려진 음식 찌꺼기, 일명 꿀꿀이죽을 파는 곳이었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는 꿀꿀이죽은 전쟁이 끝난 지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60년대 초반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줄에 세워 놓고 있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아물지 않은 상처의 고통이 되어 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한 구석에 드럼통이 서 있다. 사람들의 눈은 내 키보다 더 큰 드럼통에 쏠렸다. 나도 할머니 옆에서 길게 꼬리를 문 사람들 뒤로 차례를 기다렸다. 덩치가 큰 아저씨가 드럼통 뚜껑을 열자 사람들이 앞으로 쏠렸다. 어떤 이는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사정을 하기도 했다. 깡통을 내밀자 아저씨는 드럼통 안에 허리를 굽혀 휘휘 저어가며 표정 없이 건더기를 한 바가지 퍼 주었다.
돌아오는 길,수향리라는 마을을 지날 때였다. 길옆에 놀고 있던 몇몇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따라왔다. 너무 놀라서 할머니에게 바짝 붙으며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도 나의 손을 힘주어 움켜쥐곤 그곳을 서둘러 벗어나려는지 걸음을 재촉했다. 겁먹은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올려다보아도 마치 들리지 않는 듯 아무 말 없이 앞만 응시 했다. 한참을 뛰다시피 걸어오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들은 저 멀리서 따라오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른이 무어라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남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 진정한 나라고 했던가. 그 순간 할머니와 나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낮은 곳을 딛고 있었다.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을... . 노루꼬리 해는 산등성이에 걸쳐 걸음을 재촉하고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만 길을 가득 채웠다. 우리의 그림자는 어느새 먼저 신작로를 가로질러 저만치 드리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글을 배운 분이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과 숫자를 떼어 주셨다. 종종 이웃의 편지글을 부탁 받고 단정한 자세로 붓을 든 모습은 나의 자긍심을 한층 높여 주곤 했다. 누구와 쉽게 말을 섞지 않았고 어찌 보면 살짝 차가움이 느껴지면서 단아한 기품도 서려 있었다. 음식 솜씨로 치더라도 손맛이 뛰어나 같은 재료도 할머니 손을 거치면 맛이 달랐다. 서울에서 살던 사촌들은 할머니의 손맛이 그립다며 방학 때면 할머니를 찾곤 했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않고 죽을 끓였다. 온 방안을 뒤덮는 냄새는 허기진 나의 뱃속을 휘저었다. 그 새 돌을 던지며 따라오던 아이들은 잊어 버렸다. 방문이 닳도록 여닫는 사이 꿀꿀이죽 한 그릇이 네 귀퉁이가 닳은 허름한 목상 위에 올려졌다. 한 숟가락 뜨자 물컹한 식빵 조각이 흐물거렸다. 두 번째는 고기가 그것도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소고기였다. 그때의 고소함이라니, 목에 넘기기 아까워 요리조리 돌려가며 오물거렸다. 그 날 할머니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삭정이처럼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었을까. 제비처럼 재잘거리는 내 입만 초점 흐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때 얼룩에 절수록 인생다워 진다고 했던가. 결핍의 경험들은 세상살이를 헤쳐 나가는데 정신적인 주춧돌이 되어 주었다. 아픔이 아픔으로만 머문다면 삶은 무기력해지리라. 아픔을 다져 꿈으로 변화 시키려 부단한 몸부림을 칠 때 세상은 바뀌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주는 것이 아닐까. 할머니와 나누었던 쓰라린 경험은 가진 것 없어도 세상을 따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진저리 쳐지던 궁핍은 작은 것에 감사하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그때 할머니와 들었던 깡통엔 무엇이 채워졌을까. 적지 않은 나의 삶의 편린들이 한데 엉겨 새우젓갈처럼 곰삭은 맛을 내고 있지는 않을까. 새로운 생을 연출하려 숨 가쁘게 달려 온 길이 고향의 신작로처럼 아득하다. 어려서 나의 무대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었지만 이제는 녹슨 통 안에 담겨져 있을 깊은 맛의 양념들을 끄집어내어 맛깔스런 남은 인생의 무대를 연출해 보는 것이 남은 숙제가 아닐까 싶다.
곧게 뻗은 신작로가 환하게 펼쳐져있다. 고운 옥색 한복을 입고 단정히 빗은 할머니의 쪽에 꽂혀있는 은비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할머니 손에 들려 있는 진달래 빛깔의 가방은 화사하다 못해 화려해 보이기까지 한다. 노란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 원피스 차림의 여자아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참새처럼 조잘거리고 할머니는 그런 손녀가 사랑스러운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다. 구름에 가려있던 해의 한 귀퉁이마저 드러나며 둘의 모습을 비추는 따스한 봄볕이 더 환하게 비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