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 죽

by 구절초

한 칼럼에 눈길이 멈춘다. 아욱에 관한 이야기다. 마치 고향을 만난 듯 반가워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정성스레 읽어 내려간다. 아욱을 채소 중에 으뜸으로 여겼다는 내용이다. 여름이면 멍석만한 텃밭에 아욱이 자라던 우리 집. 활자만 보고도 마음은 벌써 내달아 유년의 초라했던 초가 마루 저녁상 앞에 앉아있다.

솥에 안칠 끼닛거리가 없는 날이면 엄마는 쌀 항아리 바닥을 닥닥 긁어 아욱 죽을 쑤었다. 자주 들어야만 했던 그 소리는 새 가슴만한 내 마음을 언제나 조마조마하게 했다. 동무들과 고무줄놀이에 정신이 팔려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 보면, 저녁 먹으라고 길게 소리쳐 부르는 엄마 소리가 들렸다. 구정물 줄줄 흘리며 문에 들어서면 아욱 죽이 자배기에 담겨 후끈거리는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볼품은 없었지만, 된장과 어우러진 구수한 냄새가 빈속을 휘저어 놓았다.

물 한 바가지 퍼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상 앞에 앉는다. 산등성이에 길게 뻗친 햇빛도 마루까지 깊숙이 들어와 한 자리 걸치기가 눈치 보이는지 엉거주춤 옆에서 기웃거린다.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죽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보면 쌀알은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아욱만 그득하다. 건더기를 허겁지겁 건져 먹으면 국물만 남는다. 마시려고 대접을 들면 때가 낀 거울처럼 멀건 국물에 얼굴이 어른거린다. 씹을 것도 없다. 그냥 훌훌 마신다. 또 한 그릇을 비운다. 배가 불룩 솟아오른다.

죽을 먹고 자는 날이면 한밤중에 엄마가 배를 손바닥으로 훑어보며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괜찮다는 대답에 그래도 다 알고 있다는 듯 팔에 힘을 주며 꼭 안고 볼에 입을 맞춘다. 내 볼에 물기를 느끼지만, 모르는 척 돌아눕는다. 엄마의 축축한 숨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시대에 자식에게 죄인인 부모가 어디 우리 엄마뿐이었으랴. 정도의 차이였을 뿐, 오죽하면 배 꺼진다고 뛰지도 못하게 하였을까. 엄마는 모르셨으리라. 쌀밥으로 채우지 못한 그믐달 같은 배가 엄마의 사랑을 먹으면 금세 불룩한 보름달로 차오른다는 것을.

언젠가 방송에서 박목월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 교수가 아버지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사 시절 강의를 마친 뒤 허기진 채로 버스를 탔다고 한다. 콩나물시루처럼 많은 사람 속에서 자리도 못 잡고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부대끼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배를 쓰다듬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버지였단다. 손바닥으로 아들의 훌쭉한 배를 확인한 아버지는 도중에 손을 잡아끌며 버스에서 내려 데리고 간 곳이 국숫집. 국수를 사 먹은 바람에 갈아탈 차비가 없어 집에까지 제법 먼 길을 부자가 터덜터덜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둘만의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촉촉해지는 눈가를 애써 감추며 애잔한 웃음을 지었다.

콧등이 싸해지며 목젖이 아파 왔다. 그분의 아버지도 우리 엄마처럼 손끝으로 자식의 배고픔을 알아냈구나. 부모의 한결같은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저린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금방이라도 등 뒤에서 엄마 손이 뻗어 올 것만 같았다.

하찮게 생각했던 아욱이 신문에 실린 글에 의하면 채소 중에 왕이라고 했다. 하물며 문 닫아걸고 혼자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도 하는데 아욱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춥기만 한 나로서는 생소하기만 하다. 강진으로 유배 간 정약용이 두 아들과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도 봄에 밭을 고르고 첫 번째로 심으라고 한 것이 아욱이라고 하고, 중국의 시인 두보도 종손에게 아욱을 가꾸는 요령을 일러 줄 정도였다고 하니 예전에는 아욱이 귀한 대접을 받았나 보다.

귀한 몸을 몰라보고 눅눅한 엄마 생각에 아욱을 심었다. 부채 닮은 풍성한 잎이 이랑에 살랑거리는 옹골진 기대를 하며 씨를 뿌렸다. 극심한 가뭄에다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 발걸음 못한 사이, 땅에 붙어 보라색 작은 꽃을 피웠다. 악조건에서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까. 제 몸도 못 키우고 마음이 바빠 꽃만 피워 낸 모습이 엄마를 닮았다. 허기진 사랑에 애면글면하시던 엄마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은 아픔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는 마법이 있나 보다. 언제나 나의 기억 속에서는 가난한 아욱 죽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때마다 생각이 났다. 친정이 멀다 보니 엄마에게 얻어먹으러 갈 수도 없었다. 큰맘 먹고 푸짐하게 아욱을 사와 하얀 쌀을 잔뜩 넣고 죽을 끓여 보아도 도무지 엄마 손맛이 나질 않았다. 양념도 듬뿍 넣어 보지만 그때의 맛이 아니었다. 물 마시듯이 넘겼던 죽 한 그릇이 이렇게 그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엄마의 체취 때문이리라. 눈물과 땀으로 간을 맞추고 자식에게 물배를 채워 줘야만 했던 한숨이 녹아든 그 맛을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아욱에 관한 기사는 춥고 배고프고 어둡던 기억에 모닥불을 지펴 주었다. 저녁에는 자식, 손주들 불러 모아 아욱 죽을 쑤어봐야겠다. 엄마 손맛을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나도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훌쩍 뛰어 몇 고개 넘어섰으니 연륜이 묻어난 깊은 맛이 나지 않을까 욕심을 내어본다. 식탁에 엄마도 모셔야지. 다시 못 올 길을 떠나셨다지만 딸의 초대에 불원천리, 구부정한 허리에 두 팔을 휘휘 저으며 기쁜 마음으로 달려오시리라. 4대가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아욱 죽을 양푼이에 퍼 담아 후후 불어가며 고슬고슬 하얀 쌀밥 같은 웃음꽃을 피워보자.

언젠가 자식들이 어미를 추억하는 시간이 오면 따뜻한 아욱 죽을 떠올리도록 제대로 한 번 맛을 내 봐야겠다. 가난한 아욱이 아닌 귀하신 몸, 아욱 죽을 기억하도록 말이다. 어서 쌀부터 씻어 불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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