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피어오르는 장미가 해거름 햇살에 한층 붉다. 빨래를 걷으려다 걸음을 옮겨 찬찬히 들여다본다. 꽃 속에 언니의 모습이 어린다. 장미의 화려함처럼 청춘을 펼치지 못하고 시들어 떨어져간 언니가 잔잔한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우리 집 이불장에는 사계절 시들 줄 모르는 장미가 피어있다. 결혼 선물로 언니가 손뜨개로 떠준 장미이불이다. 연노랑 바탕에 초록 잎사귀가 겹겹의 빨간 꽃잎들과 어우러져 향기가 배어나오는 듯 화사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행이 지났지만 나에겐 어떤 값진 양모 이불보다 소중하다. 언니는 먼저 시집가는 철없는 동생에게 정성스런 마음을 담아 나비가 춤추듯 손끝에서 수십 송이의 장미꽃을 피워냈다.
언니를 두고 먼저 결혼하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이야 독신을 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동생이 먼저 간다고 흠이 될 것도 없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그렇지를 못했다. 언니가 밤낮으로 피워 낸 장미는 신혼 방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밤이면 꽃밭이 되어 덮고 누우면 언니의 손길이 느껴져 따스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언니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언니는 갸름한 얼굴에 눈이 매우 컸다. 웃을 때면 눈웃음이 시원해보였다. 언제나 말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책보는 것을 즐겼다. 아기 때 젖이 부족해서 배를 많이 곯았다고 하더니 그래서인지 나보다 네 살이나 위지만 작고 약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잠자리에 들면 엄마를 사이에 두고 서로 가슴을 만지려 힘겨루기를 하곤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힘이 센 나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떠밀리듯 서울에 있는 어느 부잣집에 일하는 아이로 보내졌다. 언니가 떠난 후 엄마는 밥을 못 먹고 잠도 설쳤다. 언니가 없는 빈자리는 엄마의 무거운 한숨으로 채워졌다. 엄마가슴을 혼자 차지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서늘했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엄마는 바쁘게 서두르더니 서울 간다며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기차 타는 것이 설레어 종종 걸음으로 뒤따랐다. 엄마가 간 곳은 언니가 일하는 집이었다. 마침 주인은 집을 비웠고 언니 혼자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갑작스런 방문에 언니의 눈망울은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처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 주인아저씨의 바지가 언니의 키만큼 커 보였다. 엄마는 언니의 얼음 같은 작은 손을 잡고 연신 “내가 죄인이여”를 되뇌며 가슴을 쳤다. 엄마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훌쩍이는 내 가슴 속에도 샛강이 흘렀다. 엄마는 저녁때까지 주인을 기다려 사정을 하고선 언니를 데리고 집으로 내려왔다.
마침 동네에서 십리나 떨어진 읍내에 야학이 생겼다. 언니는 밤길을 마다 않고 열심히 다녔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 했지만 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밤늦게 돌아와서도 등잔불 밑에서 콧속이 까맣게 그을리도록 책과 씨름을 했다.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던 언니의 꿈이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야학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언니의 눈빛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통 말이 없던 언니는 얼마 뒤 친구들 따라 서울에 있는 봉제공장에 다시 일하러 간다며 집을 떠났다. 가난한 소녀들이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내몰리던 시절이었다.
언니가 스무 살이 되던 봄 폐결핵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집으로 내려왔다. 기나긴 투병생활이 시작 되었다. 결핵은 잘 먹어야 한다는데 세끼 해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가고 화사하던 모습은 초췌해져 핏기를 잃어갔다. 가족들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자지러지는 기침소리였다. 해가 마루를 지나 담을 넘어가면 콜록거리는 소리가 더 가팔라졌다. 나는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기침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어 귀를 막았다.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불었다. 문풍지 바르던 날, 언니가 심한 각혈을 했다. 장미꽃잎이 뚝뚝 떨어지며 창백한 창호지에 꽃물을 뿌렸다. 흥건히 쏟아 낸 선혈이 해넘이 서녘 노을같이 붉디붉었다. 언니는 결국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가슴이 저려서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장미꽃 붉은 송이를 언니의 각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시가 돋쳐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장미는 강산이 몇 번 바뀔 동안 저 혼자 장롱 안에서 사시사철 숨어 피어 있다.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니를 보내고 알았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앞에서 모두가 환호를 보낼 때 뒤에선 사무친 설음에 목이 멜 누군가가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을 언니는 가르쳐 주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만큼 이 세상에 힘든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한 이불 덮고 자던 언니를 먼 세상으로 보내는 그 아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에 난 잎도 떨어 질 때는 이에 저에 따로 떨어지는 생의 순리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김없이 5월이 오면 장미는 다시 피어난다. 그리운 언니도 함께 피어난다. 꽃 속에 어리는 언니는 여전히 서른 넷 고운 모습이다. 죽음이 언니를 불러 갔지만 언니는 이승에서 못 다한 노래를 다른 세상에서 부르고 있으리라.
깊숙이 넣어둔 이불을 꺼내어 펼쳐 본다. 침침한 등잔불 밑에서 피워냈던 장미가 방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오랜만에 장미꽃이불을 덮고 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가슴 저린 그리운 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