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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D Oct 29. 2021

이해하고 싶다

 누구나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감적 이해이든 내적 동기화이든 상관은 없다. 난 오늘 내가 사람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을 얘기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말들은 사실 어감에 따라 내 나름으로 정의한 말들이라 다른 곳에서 정의를 찾아보려 해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찬찬히 내 머릿속을 따라와 주길 바란다.



 첫째로, 공감적 이해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했다. 대상의 감정적 상태나 상황에 공감하여 그 자체로 이입하여 누군가의 존재를 새기는 것으로.

 둘째로, 내적 동기화란 사람의 어느 한 부분만 집중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닮고 싶은 마음에 가깝겠다.



 보통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첫 번째 공감적 이해로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을 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아로새기는 것. 나도 그래 왔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연고도 애정도 없는 사람의 행동 하나만 콕 집어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고 이 지점이 바로 내가 둘을 구분  점이 되었다.



 그걸 깨달은 날 적은 일기이다.

난 '사람'에 관심이 많다. 100번 그림을 그리면 100번을 다 사람을 그릴 정도로. 그렇지만 사람이 아닌 사물, 장소, 동물, 식물, 풍경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라는 생각보다, 그냥 그 감정을 나도 느껴보고 싶달까. 사람이 아닌 다른 걸 그릴 때 느끼는 애틋한 감정? 뿌듯한 마음? 완성해나가는 마음? 그 마음이 궁금해서 물음표를 줄 세웠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행복함을 동경하는 거처럼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영영 이해 못할 먼 세계 같다가도 어느 날은 갑자기 가슴 깊이 나에게로 새겨지는 날이 있다. 그럼 그때서야 이해된다. 이해하고 싶다. 알고 싶다.



"이해하고 싶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스타그램에서 피드를 유람하며 하트를 남기던 중에 컵을 그리는 게 재밌다는 사람을 보았고 손가락이 횡단을 멈추며 무엇이? 어떻게? 왜?라는 물음이 정 이해 못하겠단 얼굴을 한 채 계속해서 떠올랐다. 직접 댓글로 본인에게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으라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내 맘대로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물어서 듣는 것보다 나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럼으로써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정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해서. 내가 사람 그리기를 유독 좋아하는 거처럼 그 사람도 그 만의 이유가 있겠지. 나랑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어졌다. 왜 사람 그리기를 좋아하느냐고 많은 것 중에 무엇 때문에 하필 사람을 골라 그리느냐고. 그렇지만 결국 행동하는 건 따로 없다.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나에게도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날이 오겠지. 그럼 그때 알아차리고 반겨주면 돼.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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