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의 샌드위치 쇼케이스 안에 세워져 있던 손바닥 보다도 작은 플라스틱 입간판에 적힌 문구였다. 띄어쓰기 하나 대문자 하나 다르지 않게딱 저 배열로 적혀있었다. 직관적이고 귀여운 멘트다. 한글까지만 읽으면 아, 냉장보관 잘하라는 소리구나. 이런 걸 샌드위치 입장에서 적어놨네 귀엽다. 하고 금방 넘어갈 뻔했는데 마지막 문장이 너무 기발해서 계속 생각났다. 'I want be cool' 직역하면 나는 쿨해지고 싶어요. 냉장 보관하세요랑은 다소 거리가 먼 의미 같기도 하면서 cool의 의미는 둘 다 각자의 개성으로 잘 담고 있으니 맥락상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얼렁뚱땅 기발한 문장 같다. 문법이나 뜻이나 띄어쓰기 중 어느 하나도 정확한 게 없는데 이런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이토록 맥락 없고 귀여운 소품을 내놓다니, 의외여서 더 기억에 남았다.
자꾸 곱씹게 됐다. 오래 함께, 하고 싶으면, 냉장보관을, 하세요 = I want be cool...?
대형 프랜차이즈이기에 왠지 딱딱한 이미지가 강해서 이 정도는 철저히 직역해서 문법 맞춰 쓸 줄 알았는데. I want be cool 이라니. 괴짜 같고 귀엽다. 오히려 이런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을 신경 쓰는 게 더 귀찮음을 아는 이상 그냥 넘어가긴 글렀다. 어떤 재치 있는 누가 그랬을까. 누가 이 문구를 떠올리고 이렇게 적을 생각을 한 거지? 일탈을 시도하는 작은 악동의 소행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처음 I Want be Cool을 보고 나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샌드위치가 속이 훤히 보이는 비탈진 단면에 선글라스를 하나 얹어 쓰곤 흘러내릴까 한 손으로 쥐고 어색하게 엉덩이를 샐쭉 내민 포즈로 아이원 비 쿨. 하고 말하는 모습이다. 은근히 귀여운 협박 같기도 하다. 냉장 보관하지 않으면 나는 맛없어져 버릴 테야 라는 협박. 샌드위치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 맛없어져 버리는 것인 게 하찮아서 귀엽다.
"나와 오래 함께 하고 싶다면 냉장 보관해주세요." 가삿말 같다.
이어서 나는 이렇게 적어보고 싶다.
"내 온도를 낮춰줘요 그리고 찾아줘요 자꾸만 열어서 살펴줘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적다 보니 문득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도. I Want be Cool.어떤 이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얼굴이 변한 기색도 없이 맞받아칠 수 있길 바랐다. 인내하거나 응석 부리지 않고도 힘든 일들을 지나칠 수 있길 바라던 적이 있다. 힘들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는 내가 너무 연약한 것처럼 느껴져서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져서 온도를 낮추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그런 나를 얼른 냉장고에 집어넣으려고만 했다. 그게 좋지 못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냉장고 안에 둬버리고 영영 그 마음을 애써 외면하면 서랍 한구석에서 어느 날 썩은 채로 발견된다. 썩으면 언젠간 내가 치워야 한다. 마음은 식재료와 똑같아서 유통기한 안에 써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는다. 쿨하다는 건 내 감정을 무시해버리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내 감정을 가볍게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가끔 냉장고에 숨는다. 잠깐은 그래도 괜찮을 거야. 조금만 시원해지면 나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