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염세주의자의 임신
나는 지금 임신 16주 차의 임산부이다.
내 임신 소식은 나랑 현재 카카오톡이나 따로 연락하는 사람들 외에는 sns나 이런 거로는 따로 알리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직까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임신했다고 하면 은연중에 배신감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걸 안다..(나 또한 딩크였다가 임신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배신감을 느꼈었다)
사실 난 20대부터 결혼은 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낳고 싶지가 않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식의 세대인지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행히 내 생각은 유별난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딩크를 생각할 무렵,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너무나도 당연한 추세였고, 낳아야 할 이유보다 낳지 않아야 할 이유들이 유투버에서도 판을 치고, 온라인에서도 판을 치고 있었고 이유는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을 21살에 만나 연애를 하였고 한 사람과 14년을 보내니 35살이 되었다.
이제 사실상 노산이 되었고, 우리의 결혼생활은 평탄했지만 단조로워졌으며, 남편은 잦은 해외 출장을 더 이상 가지 않는 직군으로 옮기게 되었고, 집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너무너무 가지고 싶고 사랑해서 임신을 준비한 거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살면서 더 이상 내편일 것 같던 사람들이 내편이 아니라는 것, 진정한 내 편은 역시 가족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흘러가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가족을 더 늘리기로 했다.
그렇다. 이 모든 이유가 아이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나' 때문인 거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아이를 품고 있는 지금, 정말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걸 하루하루 뼈저리게 느낀다.
요즘엔 길에 지나다니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그런 부모의 피땀으로 태어났을 생각을 하니 아이들이 더 애틋해 보인다.
물론 그전에도 아이들은 무척 이뻤지만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 건 아무래도 내가 임산부이기 때문이겠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임신준비
건강검진에서 나온 양성 혹으로 인해 수술도 하고, 호르몬 치료도 받으면서 결국 시험관까지 하게 된 나의 임신과정.
첫 번째 시험관은 처참히 실패하고
두 번째 시험관에서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는 다행히 16주 차인 지금까지 주수대로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중간에 유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도 하고, 여태껏 집에서 누워있는 생활만 하다 보니 정말 임신은 임테기 두줄이 끝이 아니고, 출산 직전까지 하루하루 내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지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마음 졸이며 버텨나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느낀다.
내가 아이를 사랑해서 가지는 것보다, 이렇게 소중히 지켜냈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것을...
앞으로 6개월이나 더 아이를 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잔인하고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둘째는 없을 것이기에 이 시간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임신을 하고 집에만 있으면 사실 소통할 사람 하나 없는 내 처지가 조금은 서글프다.
그렇게 열심히 연락하던 직장 동료들은 직장을 나가지 않는 순간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이미 연락이 뜸해졌으며,
미혼이거나 딩크인 친구들에게는 괜히 연락하기가 조심스럽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상황가 딱 떨어지는 누군가를 찾기 어려우니, 상황에 맞춰 자연스레 혼자가 되었다.
외롭다는 감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라서 그런지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았다
예전엔 지극히 우울하다는 감정이 컸는데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뭐 하는 느낌이다.
이런 것도 나이에서 오는 짬바인 건지 아니면 내 뱃속의 아이가 주는 안정감인지 암튼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줄었지만 그만큼 나에 대한 생각과 성찰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자주 꿈꾸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지금처럼 또 주어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을 거 같아 늦은 밤 처음 브런치에 글을 남겨보았다.
#딩크#임신#16주차#임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