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길고양이들을 그리며
돼지야 나는 너를 만나기 전과 이후로 나뉜다 알고 있니?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너와 치즈가 그 추운 겨울에 내 코트 밑단을 서성거렸어. 어쩔 줄을 몰라서 한참을 서있다 후다닥 캔이랑 물을 사 왔는데 온데간데없더라. 고양이는 매번 그런 식이지만 그때의 난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지 섭섭했어. 나는 금세 정을 주는 편이 거든.
너는 유독 야위었고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꼬리도 뭉툭해서 내 신경을 온통 너에게 쏟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어. 누가 그러더라 짧은 꼬리는 아가일 때 잘 먹지 못한 탓이라고. 결국 나는 기어코 너에게 '돼지'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어. 이름이 사람을 만든다는데 고양이라고 특별할 거 있겠나 했다. 그래도 돼지야 하고 부르면 곧잘 냥양하고 대답을 해줬으니 너도 썩 싫지만은 않았던 거지?
널 만난 이후로 나는 매번 다니던 확 트인 길이 아닌 네가 숨어있을 법한 모퉁이 사이사이를 찾아다니곤 했었어.
몰래 너희 밥을 챙겨주고 누가 해코지라도 할까 흔적도 없이 치웠지.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거든. 나는 있잖아 그 순간만큼은 나도 꼭 고양이가 된 것 만 같았어. 들키지 않으려 숨도 얕게 쉬곤 했었다.
작년의 나는 추운 겨울만 잘 넘겨보자 했는데 한 계절을 보내고 어느새 봄이 왔어. 그사이에 너는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겼고 물론 내속도 썩였으며 치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길 생활이 참 고단 했겠거니 싶어. 그래도 한 끼 정도는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했으려나.
그 후로 난 네가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원래 이별도 연습하면 익숙해지는 법이거든.
나는 매번 술에 절어서 사랑이 대체 뭔데 하는 같잖은 소리를 늘어놓지만 이제 사랑하면 너부터 떠오르는 걸 알고 있니? 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될걸 이렇게 지겹도록 늘어뜨리는데 누구보다 탁월한 재주가 있다. 너도 야옹 말고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우리 둘 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렵겠다 그지?
아무렴 어때 내가 주는 사랑은 변함없을 텐데 그치?